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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프린스의 독서노트/인문

삶의 의미라는 커다란 물음 빅 퀘스천 - 줄리언 바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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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시절 이후로 생각해본적 없는
철학의 메시지
삶의 의미라는 거창한 의미로
다시 철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준 책








삶의 의미라는 커다란 물음 빅 퀘스천 / 줄리언 바지니 / 필로소픽 / 2011년

'삶의 의미' 와 어렵다. 앞에서 철학에 대한 흥미를 다시 불러준 책이라고 말했는데
사실 이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최근에 사람들이 책을 읽는 주요분야는
누가 뭐라고 해도 역시 '자기계발'과 '경제/경영'류가 아닐까 생각된다.

오래간만에 접하는 철학에 관련된 언어들이 내 두뇌의 촉각을 곤두서게 만들었고 최대한
집중하고 긴장하면서 읽어야만 했다. 하지만 다 읽고나니 나름대로의 인문학 안에서의
철학의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책에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 '거품을 빼고' 설명할 것이다.
즉 '인생의 의미'라는 신화적이고 신비로운 하나의 질문을, 인생의 다양한 의미를 다루는
전혀 신비롭지 않은 작은 질문들로 환원할 것이다.
이 방법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이하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서문중에서 p17)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최대한 단순하게 간결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가
이 책을 읽기전에 우선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답이 없겠구나'하는 예상을 하고 읽었다.
왜냐하면 이런 주제는 정답이 있다기 보다는 각자가 생각하는 원칙과 생각의 줄기가 나름의
사상을 만들어주는 주제이기에 그저 저자의 풀어가는 방식이 궁금했을 뿐이다.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인생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
인생의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이 목적이 창조주가 꿈꾸던 것인지, 스스로 부여한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인생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창조주에
의해 주어진 의미보다 열등하다고 볼 이유는 없다. (본문중에서 p30)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어떤 목적과 의미를 부여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목적과 의미가 정답을 이루는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인생이 아닐까.
왜? 바로 우리각자가 인생의 주인이니까.

최초의 목적이 영원한 목적이 되는 것도 아니고 최초에 목적이 없었다고 해서 영원히 목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목적은 획득될 수도, 없어질 수도, 변경될 수도 없다. 바로 이것이 삶의
기원이 사람의 목적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못하는 이유이며, 또한 생명이 어떤 목적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자연주의적 믿음이 인생에 목적이 있을 수 없다는 뜻 아닌 이유이다.
(본문중에서 p40)


저자가 삶의 의미에 대해서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큰 주제에서부터 하나하나의 부제를
뽑아내어 삶의 의미와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가고 있다.
정답은 없지만 확실한 자기주장은 있다.

미래가 과거를 정당화할 만큼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이 위험요소가 아니다.
그 미래가 영원히 오지 않을 위험도 있다. 인생의 목적을 미래에 두는 것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는,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존재인 우리가 미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일흔은 넘게 살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한 일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꼴이다. (본문중에서 p54)


우리가 인생에 대한 설계를 하고 계획을 세울때, 이런 가정을 많이 할 것이다.
30대에는 뭘하고, 40대에는 뭘해서..어쩌구 저쩌구... 이런 가정에 대한 일침이 아닐까?
물론 계획없이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미래에 사용할 나의 즐거움을 오늘 즐기겠다는
그런 논리에서의 경고도 아니다. 단순하게 미래의 목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해부하고 있다.
삶의 만족 자체를 미래의 무엇인가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이
기존에 자기계발을 위한 미래지향적 사고와 달라 신선하다.

철학은 종종 평범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물을 필요조차 없어보이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진보한다. 가장 화나는 질문 중 하나가 "...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죠?"이다.
철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단어의 의미를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철학자들이 토의에 등장하는 용어들을 명확히 하기위해 단어의 명확한
정의를 내려달라고 요구하면 짜증을 내기도 한다. (본문중에서 p86)


직업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이 서평을 쓰고 있는 필자의 경우도 이런 대화를 즐긴다.
처음에는 피곤하게 뭐하는 짓이냐하고 생각했지만, 꼭 철학적인 대화가 아니더라도 논리적인
사고의 정리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대화방법이다. 이런 대화가 한편으로는 철학자들의
대화방법이라고 하니 더욱 흥미가 간다.

행복이 가치 있는 삶의 목표라는 것,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무엇이라는 게 분명한 듯 보이지만,
다른 한편 행복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철학자들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행복을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자명함과 난해함이 섞이는 이유는 '행복'이란 말이 명확한'
의미나 지시 대상을 가진 단어가 아니라 일종의 모호한 지칭어이기 때문인듯하다.
(본문중에서 p124)


이렇듯 행복이라는 것이 모호한 지칭어 이어서 우리에게는 자신만의 행복을 해석하기 위한
철학적인 접근이 꼭 필요한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실체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또 그 의미를 삶속에서 즐길 수 있을까?
결국 모호한 의미의 추상적인 단어 또는 용어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명확한 해석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추구할 수 있는 실체로 다가오리라 믿는다.

행복의 가장 큰 장애물은 어쩌면 행복에 대한 현대의 신화 자체일 것이다.
행복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으면, 다른 사람들이 타당하게 바라는 것 이상을 가져도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우리는 인생에서 당연하게 여길 수 없는 것들을 거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위험에 처해 있다. 구식으로 들리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법을 잊었고, 갖지 못한 것을 원망할 줄만 알게 되었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더 많이
가져야만 만족할 수 있는 갈망과 다름없어졌다. 바로 그 갈망이 문제다. (본문중에서 p138)


이 이야기는 진부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현실이다. 모두가 행복에 대해서 같은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접근하기에 더욱 불행해 지는 것 같다. 좋은 집, 좋은 차를 가지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절대적인 기준을 내세우기에 바로 우리앞에 있는 행복을 인식하지 못하는 아닐까? 때로는 눈을 주변으로 돌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자신만의 행복을
발견해보자. 그러면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가장 큰 위험은 자기계발 문화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 대한 희망과 결핍감을 조장하는
방식에 있다. 이런 책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약속하며 그것을 쉽게 획득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인생은 단순히 X, Y, Z라는 일을 하는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인생이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우리는 성취와 유의미한 인생을 위한 완벽한 처방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본문중에서 p160)


현 세태에 대한 따끔한 충고다. 실제로 자기계발 서적을 읽고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다 할 수 있을것 같고, 뭐든 잘 될 것 같다. 물론 현실은 냉혹하기 그지없다.
최근 자기계발 서적들이 다 그렇게 보인다. '그저 믿기만 해라.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다.'
라는 방식의 책들. 실제로 이루어졌는가? 진심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차라리 자기계발 서적이 아니라 종교라 말하고 싶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인생에 대한 처방은 자기 스스로 내리는 것이 아닐까?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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