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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ta Capitalism

생명이 자본이다.





생명이 자본이다 / 이어령 / 마로니에북스



그의 글을 읽으면 뭔가 지식의 깊이가 느껴진다. 언어의 마술을 깊이있는 지식으로 새롭게 풀어가는

그의 글이 한편으로는 그저 부럽기만하다. 누군가 그와 인터뷰를 할 때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

했다는 말이 이해가 간다. 이 책에서도 '금붕어'라는 단어안에서 큰 원을 그려가며 한 권의 컨셉을

풀어나가고 있다.



   이제 80입니다. 8자를 눞히면 무한대의 기호가 되고 뫼비우스의 띠로 변한다고 내 나이에 

덧칠을 해보지만 이제 글쓰기도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아침마다 기억은 저만큼 도망치고 

내가 길들여 온 '말'들은 흰머리카락처럼 빠져 사방에 흩어집니다. 내 삶 전체가 쓰레받기에 

담기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파집니다. 조금 일찍 쓸 걸 그랬나 봅니다. 구술도 해보고 메모한 

것을 완성하기 위해서 젊은 대필자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이 내 목숨을 대신해 줄 

수 없듯이 글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지내보고야 알았습니다. (본문중에서 p7)


이 책을 처음 접하고는 80이라는 나이에 '신간'이라는 단어가 '이어령'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독자

들로 하여금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느낌이었지만 프롤로그의 글처럼 세월의 흐름을 빗겨갈

수 없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인가봅니다. 필자의 경우는 그를 늦게 만나 '디지로그'를 통해서

그의 진가를 느꼈지만 이 책에서도 녹슬지 않은 그의 지식의 깊이가 묻어나는 것은 아마도 이어령

작가 자신만의 세월의 무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살아있다. 살아있었구나. 전쟁과 피난살이 속에서 젊은이들이 겨우 매달려 산, 시 한 

구절이 있다. '바람이 이는구나. 아, 살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명 남의 말로 된 시 

한 구절이 아니었다. '자살'이라는 말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된다는 강렬한 모국의 언어로

 감지한 목숨, 그때까지 숨기고 살아온 내 굳은 생명의 살점을 만져보는 순간, 음표와 음표 

사이에서 침묵하던 목청이 트인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나도 모르게 하얀 입김과 함께 튀어나온 

말이 유레카였다. (본문중에서 p22)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은 금붕어 에피소드에서 시작하여 금붕어로 돌아온다. 필자가 마음에 들어

한 글들의 대부분은 하나의 주제를 통해서 반복해서 그 지식을 두텁게 그려가면서 다시금 주제의

무게를 진하게 독자들 가슴속에 심어주는 형태의 글들이었는데, 이 책도 그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바로 금붕어를 통해 저자가 느꼈던 삶의 무게를 생명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언어에 얹어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콩 세 알에 담긴 마음을 이어 나가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중 하나의 이론이 바로

'자연자본주의'다. 자연과 자본주의는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말이다. 쉽게 말하면 돈이나

산업과 같은 것을 자본으로 하여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물,바람, 태양 그리고 자연의 모든 

생태계를 자본 삼아서 재생산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자본주의로 바꿔가자는 것이다.

(본문중에서 p170)


콩 세 알에 담긴 마음이라는 것이 어쩌면 화폐경제를 앞세운 지금의 자본주의 문화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주장으로 들리겠지만 지금의 인류가 겪고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이 결국은 그러한

각박한 세상의 원인이된 여러가지 자본주의적인 문화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국 자연, 생명

이라는 주제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문화가 새로운 자본주의로 자리잡는다면 자본주의로

인해 상처받은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새로운 키워드가 될 수 있지않을까하고 생각해본다.



  사자들과 영양들의 경주가 아니라도 우니라나 말에 보면 '먹힌다'는 말이 참 많다. 우리는

'말이 안 먹히네', '아이디어가 안 먹히네'라는 말을 쓴다. 소통은 대개 먹히는 것이다. 먹혀야

소통이 된다. 내 말이, 내 마음이 상대방 마음에 먹혀야 통하는 것이다. 안 받아주면 나는 말을

하나마나이다. (본문중에서 p178)


최근에 와서 '소통'이라는 말이 계속해서 회자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소통이라는 것이 중요한

키워드로 다가올 만큼 우리의 대화에 문제가 생겼나보다. 우리가 흔히 일을 잘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느냐에서 판가름 난다고 말한다. 그 방법이야 여러가지겠지만 상대의

마음을 열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생명의 소통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생명 자본주의 설파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메시지인 것이다. 결국 물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은 먹는 것이지만, 정신이나 영혼

에서 보았을때는 먹히는 쪽이 더 위라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말이 뒤늦게 이해를 부르는

것이다.



  '유레카'라고 하는 감탄사 하나의 낱말을 통해서 우리는 희랍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문화인류학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이고'라는 언어를 통해서 이 지상에서 가장 청정하다는 

파랗고 투명한 바이칼 호수까지, 그리고 그 추위까지 갈 수가 있다. 철학 용어도 아닌, 과학 

용어도 아닌 우리 조상들이 남긴 말이다. 남들처럼 금붕어를 많이 기르지도 않는, 

상품화하지도 않는 우리 조상들이었지만, 붕어란 원종의 말을 남겨준 까닭으로 나는 금붕어를 

통해 붕어들이 놀던 그 생명공간까지 도달할 수가 있었다. (본문중에서 p245)


이 책의 '생명 자본주의'를 설파하기 위한 최초의 에피소드. 바로 '금붕어'에서 온 것이 이 책의

전반에 큰 원을 그려가면서 계속해서 진한 원을 만들어주고 있다. 그것이 저자의 언어 속에 흔적을

남기면서 '생명 자본주의'를 더욱 독자들의 뇌리속에 각인 시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소통방식인 

것이다. 때로는 금붕어라는 단어에 대한 한중일 삼국의 어원에서부터, 그들의 금붕어 사랑까지.

지식을 풀어가는 방식이 움베르트 에코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면 필자만의 생각일까?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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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 셸리 케이건 / 엘도라도


제목부터 뭔가 어렵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뭔가 물음표를 달고 끝내야 할 문장에 물음표는 존재

하지 않는다. 그만큼 저자의 강한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가. 이 책의 표지를 보면 그런 성향을

더욱 느낄 수 있는데 바로 공중부양을 하고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는 강의실 탁자위에 가부좌를

틀고있는 저자의 모습이다. 책의 두께에 놀라버릴만 한 분량이지만 일단 책장을 펼치고보면 그런

생각은 날아갈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육체적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 더 많은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이 육체적 사망 이후에 살아남았다고 해보자. 정말 그렇다고 해도, 과연 

얼마나 더 오래 생존할까? 영원히 이어질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은 불멸의 존재인가?

(본문중에서 p34)


사실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우리는 그저 두려운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또 많은 생각하는

것이라면 바로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라는 주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이 주제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자신있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셸리 케이건의 글을 읽다보면 뭔가 모를

논리의 고리 안에서 자신만의 주장을 펼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셸리 케이건은 사후세계라는 측면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 주장으로 논리를

펼쳐가고 있다.



우리의 정신적인 삶은 이처럼 경험의 질적 측면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어떤 순수한

물리적 존재도 이와 같은 특성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계도 고통을 느끼고, 빨간색을

인식하며, 희열을 맛보지 못한다. 기계는 경험의 행동적 측면을 가질 수는 있으나 질적인 측면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두 가지 측면 모두를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수한

물질적 존재 이상이다. 인간은 기계 이상의 존재인 것이다. (본문중에서 p62)


이 책의 재미는 죽음이라는 심각해보이는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논증을 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지만 더 재미있는 점은 바로 저자의 다양한 생활 속 예시를 통해서 논증을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예시 안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죽음에 대한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공감을 할 수 있고 또

자신만의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데에 더 높은 평가를 해주고 싶다.



가령 린다가 잠을 자고 있을 때, 그녀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원소들을 해체해 새로운 몸을 

창조했다고 해보자. 그건 100퍼센트 바뀐 것이며 선을 넘어선 변화다.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변화의 정도가 근본적인 차원이어서는 안 된다. 저녁을 먹거나 체충을 줄이는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는 중대한 수준의 변화가 아니다. (본문중에서 p179)


물론 이 책에서 나오는 예시들이 모두 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몸을 모두 해체해서 다시

조립하는 것 자체가 지금의 과학으로는 말이 안되는 것이지만 우리의 상상안에서 이루어질 수는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깊은 생각들을 이끌어 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단, 위의 예시처럼 저자가 선을 긋고있는 '변화의 정도'라는 저자의 상식 안에서의 공감을 이끌어

내려는 기준제시가 바로 이 책의 맹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정량적일 수 없는 기준에 대해서

어떻게 가정하느냐에 따라서 논증의 결과는 이미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버리기에 조금은

죽음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있어서 방해요소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방해는 바로

'변화의 정도'가 얼만큼 되어야 근본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냐라는 논쟁을 만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신에게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이 말이 사실

이라고 해보자. 그런데 사람들 대부분 경쟁에서 이기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는 일에는 별로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자신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본문중에서 p281)


뭔가 틀에 박은 듯한 말이지만 위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결국은 우리가 죽음이라는 자체에

대해서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닌가 생각된다. 뭔가 유한하다고 생각하는 삶 안에서 우리가 죽음을

대처하는 방법이라는 것은 한정된 무엇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죽음 자체에 대해서는 우리 인간이

대처할 수 있는건 그저 한계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생이 지속되는 한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와의 의미있는 시간을 최대한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현실적인 제약이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지만 우리가 바로 이 책

안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교훈은 다양한 논증이라는 바로 이런 근본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두려움의 대상을 정확하게 지목할 수 있다. 그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따르는

박탈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박탈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상대적으로'내건, 즉 두려워하는 대상이 나쁜 것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킨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죽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죽음으로 인한 박탈이라고 한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적절한 감정이라고 하겠다. (본문중에서 p418)


바로 이 '박탈이론'이라는 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에

공감하기 때문에 바로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모두가 믿으려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제 자체가 너무나 무겁고 어려운 것이기에 책을 처음 선택했을 때에 걱정이 앞섰지만 다 읽고

나서는 읽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더욱 진정성 있게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었다는 소득도, 한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으로 논증에 임할 수 있다는

생각의 분류에 대한 나만의 정리라는 소득도 얻을 수 있었으니 예일대 최고의 명강의 답게

일석이조의 선물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마무리 한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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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lf Illusion

영원불변한

'나'는 없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모두 가짜라면 / 브루스 후드 / 중앙북스


자아가 착각임을 이해한다면 여러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 마주치게 되는 일상의

모순들을 보다 해결할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상황에 휘둘리는 것은 너무도 잘

알아채지만, 막상 자신이 다른 사람의 영향과 통제에 놀아나는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까지 내 안의 영원불변한 것이라 생각했던 '자아'가 곧 '착각'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알아둘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이다. (본문중에서 p16)


제목에서 받은 느낌은 우선 심리학적으로 흥미로운 주제를 선택했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이중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그런 경우는 우리가 뉴스에서 보아왔던

싸이코패스 범죄자 라던가 뭔가 충격적인 모습의 사람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우리의 뇌구조에서

무엇인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 일어난 조작이라는 인자가 우리에게 또 다른 나라는 모습을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운 것이니까...

 

 

어른들은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다들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그런 문제를 겪지

않는다. 나중에 같은 인종의 얼굴을 더 많이 접하게 되면서 식별력은 사라진다. 하지만 다른

인종의 얼굴도 계속 접하게 해서 자신의 인종에 특화되지 않도록 아이를 훈련시킬 수 있다. 그러니

여러분이 다른 인종의 사람들은 다 똑같이 생겼다고 생각하더라도 걱정할 것은 없다. 그것은

인종차별이 아니라 뇌 가소성이 사라진 것뿐이다. (본문중에서 p85)

 

이 부분은 우리가 그간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저 외국인들이

'동양인들은 다 똑같이 생겨서 누가누구인지 잘 모르겠다'라는 말을 들어온 것이 그저 서양인에

비해서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아 그런가보다 했지만 그것이 바로 뇌 가소성이라는 용어 그리고

우리의 뇌 안에서 익숙한 환경에 노출이 얼만큼 되느냐라는 차이였다는 흥미로운 결과인 것이다.


 

우리는 집단에 속하기를 원하는데, 바꿔 말하면 우리의 행동을 통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원하는

대로 행동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하므로 자부심을 갖고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려면 다른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본문중에서 p132)

 

결국 내 자신에 대해서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나 인 것이다. 남들이 나를 인지하는 것은 또

다른 시각을 거쳐서 보여지는 나이기 때문에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 하지만 때로는

너무나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다보면 남들이 인지하는 나와의 괴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차이가 너무나 커지면 결국 나에 대한 현실적인 평가를 내리지 못해 이른바 문제있는

사람이 되는게 아닌가 생각된다.


 

충동을 조절하고 통제할 줄 아는 사람은 참을성을 갖고 문제 해결에 매달리고, 쉽게 지루해하지

않으며, 유혹이와도 물리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덜 이기적으로 굴기 때문에 상대방으로부터도

호감을 살 수 있다. 사회적 교류는 거의 대부분이 개인 간의 이해관계 갈등으로 이어진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자제력을 갖고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능력이 없으면 반사회적이 될 수밖에 없다. (본문중에서 p193)

 

사실 어른이 된다는 과정은 신체의 발달을 통해서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으면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주기 어렵다는 것이 통념이 아닐까 생각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충동을 조절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하루하루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또 느낀다. 그만큼 이런 심리적인 조절능력이 바로 우리가

갖춰야 할 나를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숙명론처럼 들린다. 이런 사고방식은 사기를 저하시키고 행동의 의욕을 떨어뜨린다.

이런 이유로 자유의지의 믿음은 그 사람의 직업 수행력과 경력의 성패를 예측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자유의지를 믿는 사람은 동료들보다 일을 더 잘하고 상사로부터 인정과 보상을 받는다.

그러므로 삶을 즐기려면 자유의지를 믿어야 한다. (본문중에서 p247)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그저 그렇게'라는 쉬운 말로 살아가기 때문에 '자유의지'라는

말에 대해서 '당연한거 아냐?'라고 대답할지 모른다. 내가 내맘대로 살아가는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라는 표현으로 받아들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어릴적 도덕책에서 배웠듯 결국 자유 뒤에는

그 자유를 위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이 현실일 것이다. 결국 자유의지라는 것도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긍정적인 힘을 발산할 수 있는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건과 개인적으로 오래 접촉할수록 거기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며 떠나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판매자가 우리에게 직접 한번 입어보거나 타보라고 권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고객에게 물건과

접촉하도록 하면 판매하기가 한결 쉽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보유 효과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물건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잃을지도 모를

손실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본문중에서 p288)

 

이 글을 읽는 이들은 자신의 방을 빙 둘러보라. 아마도 지난 일년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물건이 방안에 굉장이 많다는 것에 놀랄지도 모른다. 필자의 경우도 방을 둘러보니 그저 장식처럼

채워진 물건들이 매우 많다. 매년 조금씩 정리하지만 계속해서 늘어가는 것을 보면 소유한다는 것

그 자체게 인간에게는 뭔가의 의미를 주는게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사용하지는 않지만 버리지

못하는 것이 바로 저자가 이야기하는 손실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 아니겠는가. 아마 여러분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내 꺼니까.'.......

이 책은 그간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는 우리의 심리 안에서 자아라는 주제를 뇌 속에서

다각적인 형태로 파생되는 의미들을 다루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또 다른 나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보다도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좋은 사례들이 있다는 것이다.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좋은 사례로 가득 채워진 책 안에서 자아를 다룬 심리학 서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그런 책이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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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삶의 선택을 한

열두남자의 유쾌한 인생밀담

다양한 남자들의

책에 대한 이야기들









남자는 서재에서 딴짓한다 / 중앙M&B / 조우석


이 책의 기본적인 컨셉은 12명의 유명인들을 통해서 우선 눈길을 끈다는데에 있다.

하지만 뭔가 김정운 교수의 '남자의 물건'과 유사한 형태라는 생각도 든다. 유명인의 서재를

중심으로 인터뷰를 마치고 그들에게 영향을 준 책들을 소개하고 있는 형태가 나름의 재미를 주고

간간이 들어오는 그들의 멋진 서재의 모습이 눈요기(?) 거리로 충분하다.



책을 볼 때 저는 좋은 대목엔 연필로 밑줄로 치는 버릇이 있는데, 다 읽은 뒤 밑줄 친 대목만 따로

타이핑을 해둡니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경우 A4용지로 20쪽

이더라구요. 여기 타이핑해둔 걸 보세요. 이렇게 해두면 나중에 그것만 읽어도 행복하고요.

훗날 이걸로 '박웅현의 생각노트'같은 작업을 해도 좋을 겁니다. (본문중에서 p20)


사람들마다 책을 읽는 방법이 다들 제각각이지만 박웅현의 방법과 동일한 방법으로 필자도 책을

읽고 있다. 물론 위의 방법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우선 책을 읽을때 마음에 드는

문구를 만나게되면 꼼꼼하게 줄을 치거나 태깅을 해두어야 나중에 타이핑을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타이핑으로만 끝나면 아쉽기에(?) 다시 읽어보고 그곳에 자신의 생각을 끄적여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여기에 자신의 생각을 더해서 다른이에게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면 진정으로 책에

대한 자신만의 시선을 남들에게도 전파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독서의 시작과 끝이 아닐까 생각한다.



제가 보기에 40대 이상 중년들은 집단 우울증에 빠져 있어요. 남자들의 경우 대부분 역할과 상관없이

우선 적당히 부패했다고 보고요. 그리고 푹 퍼진 채 꿈이 없이 살아요. 그들의 취미와 관심은 획일적

이죠. 고급 차, 주말 골프 그리고 크고 비싼 집 장만이 그것인데요. '지금 여기'에서의 삶을 즐기지

못한 채 내일, 모레 그리고 10년 뒤에 목숨 거는데, 맹점은 따로 있죠. 막상 죽음이라는 걸 응시하지

못한 채 버둥대요. (본문중에서 p47)


윤광준 작가의 40대에 대한 이야기. 집단 우울증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푹 퍼진 채 꿈이 없이'라는

부분은 정말 공감한다.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렇다.

아니 정확하게는 그래 보인다. 물론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신만의 꿈을 간직한 채 퇴근 후 그 꿈을

이루기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다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하루의 피로라는

끝자락을 술잔을 기울이거나 야근으로 채워가는 것이 일상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흔한 말로 들리는 명제가 우리의 실상앞에 펼쳐져있지만 적장 40대

직장인이라는 본인에게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잊고 싶은 것이 아닐까. 하지만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숙명앞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서 저자는 직언하고 있는 것이다.



저는 취미, 취향이라는 말 대신 일상 혹은 '삶의 미학'이라는 말을 쓰자고 제안합니다. 일상, 그것이야

말로 나를 잡아주는 균형추인데, 그게 없으니 트렌드를 따라가고 남의 문화를 베끼면서 자꾸만

휘둘립니다. 예를 들어, 어느 날 일본계 미국인 조지 나카시마의 원목 가구가 트렌드라고 하면, 모두

거기로 쏠립니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노출 콘크리트가 건물 마감재로 좋다고 하면, 그런 건물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섭니다. 사회가 붕 떠 있는 거죠.(마영범 인터뷰중에서) (본문중에서 p112)


자기계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요즘 계속 반복되는 '실천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도 이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보인다. 그것은 바로 삶 안에서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유행이라는 것을 아무런 생각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곤 한다. 마치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큰 문제라도 생기는 것처럼. 매스미디어에서 눈에 보이게 반복적인 것들을 쏟아내도

그것을 마치 전부인양 생각하고 반응한다.


바로 자신의 생활과 사회 안에서 나는 없는 것이다. 누군가 결론을 내주기를 바라고 선택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저 그 안에서 가장 주류라는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발상이 우리의

삶 자체를 잠식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생각하지 않으면서...



고전이란 제목은 알지만 읽지 않는, 그런 게 아닙니다. 저에게는 천년의 지혜가 담긴 큰 우물입니다.

젊은 층에게 그걸 전해줘야 하고, 스스로 가서 우물물을 마시게 해야 합니다.

고전에 담긴 천년의 지혜란 결국 보수 사상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인류의 모든 훌륭한 철학자들은

혁명을 꿈꿨지만, 지혜를 통한 '평화적 혁명', '조용한 혁명'을 가르쳤던 겁니다. 그래서 고전이

보수 사상의 핵심이죠.(홍정욱 인터뷰중에서) (본문중에서 p157)


최근에 들어서 인문고전 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오는 책이며 각종 콘텐츠들이 마구잡이로 늘어가는

것을 보면 참 재미있다. 물론 인문고전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권하는 사람들도

정확하게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한 기준없이 그저 좋다고만 권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문고전을 반드시 읽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알맞은

컨텐츠가 무엇인지를 고르는 힘이 아닌가 생각된다.

새로운 것과 고전과의 적절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접점을 찾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결국 그런 과정 안에서 무엇을 읽어야 할것이고 그 안에서 무엇을 얻을것인가가 나오지 않을까?


이 책안에서 사회각계(?)의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시각과 함께 그들의 서재라는 주제로 삶을

약간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고 또 그들의 생각이 서재라는 테마로 표현되어 있다.

왠만해서는 열두남자를 한자리에서 만나기 어려운 만큼 이 책 한 권을 통해서 한 번 만나 보는것은

어떨까?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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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들의 연쇄

이렇게 지식의 끈이 

길고 또 길줄이야.











마녀의 연쇄 독서 / 김이경 / 후마니타스


이 책은 뭔가 특이한 독서의 끝말이어가기와 같은 그런 분위기의 책이다. 누구나 책을 읽다보면

어느순간에는 '무슨 책을 읽어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바로 그런때 연쇄 독서

라는 방법으로 지식의 원을 조금씩 크게 그려간다면 독서의 재미를 배가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소 특이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연쇄독서를 완성시켜 가고 있다. 

때로는 저자의 작품에서, 작품의 주요 모티브에서 또는 역사적인 배경이나 사회적인 이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독서의 꼬리를 이어가는 아이디어가 참신하기도 하지만 저자만의 폭넓은

독서와 함께 그 분량에도 압도당할만 하다.


연쇄 독서는 이처럼 도처에서 별별 이유들이 빌미가 되어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소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독서가 연쇄에 연쇄를 거듭하여 스스로도 놀랄 근원의 독서로 

나아가기도 합니다. 베스트셀러나 추천 도서 목록을 좇아 읽을 때는 경험하기 힘든 의외의 

만남이고 시야의 확장이지요. 연쇄 독서의 매력은 거기에 있습니다. (본문중에서 p15)



언어와 문화들의 사멸을 방치하면 이 세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총량이 직접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왜냐하면 이 세계의 풍부함과 다양함을 이야기하던 목소리들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떤 종이 멸종하면 환경의 어느 고유한 부문도 함께 희생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목소리들이 하나하나 사라지면서 우리는 자신이 누구였는지, 누구인지,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를 조금씩 잃게 된다. (본문중에서 p49)


최근 출판업계에 최대의 불황이라는 수식어가 어떤 업계보다도 더 강조되어 떠돌고 있다.

물론 기술적인 측면과 인터넷 열풍을 타고온 온라인 서점의 득세와 새로운 포맷의 독서의

붐을 일으키고 있는 이북. 겉으로 볼때는 환경도 좋아지고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창구가 생긴것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출판물들이 마케팅이라는 도구안에 갇혀서

한정된 지식만을 반복해서 생산해내는 환경을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음반업계에 비해서 출판업계는 비교적 불법복제라는 측면에서 자유로운 편인데, 책

판매량 만큼은 그에 따라주지 못하나보다. 쉽게 생각해보면 출퇴근길에 책을 보는 사람보다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



그가 죽는 날까지 끊임없이 아우슈비츠를 증언한 이유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람들이 인간이 만든 이 세계의 지옥을 인정하고 대면하기를, 그리하여 자기 안의

지옥을 정면으로 응시하기를 바랐던 것이지요. 그 지옥에 머무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이 세상에 그런 지옥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더 이상 인간이라는 말을 쓸 수 없을 만큼 끔직해진

'인간'을 회복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본문중에서 p97)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행동에는 이타적인 측면도 있지만, 이기적인 때로는 잔인한 면이

더 부각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2차 세계대전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상상하기 어려운 민족말살정책과 같은 독일군의 당시 행태는 용서라는 단어와 함께

미래에 재발방지를 위한 경각심이라는 표현보다는 중동사태에서 지속적으로 빚어지고 있는

정치적, 종교적 문제들이 인종간의 사람과 사람간의 갈등을 잔인한 행동으로 표출하고 있는

반복되는 역사의 현실인식으로 밖에는 비춰지지 않는다.


인간의 회복이라는 존엄하고 진지해보이는 대주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 바로 현실인식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렇기에 우리가 끔찍한 역사의 현장을

복원하고 어릴때부터 가르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가 이렇게 농민의 권리를 강조하는 이유는, 식량 문제는 결국 민주주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아의 근본 원인은 식량이나 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부족하기 때문"

이라는 프란시스 무어라페의 말을 인용하며, 식량 안보를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종자

다양성에 대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접근성"에 달려 있다고 단언합니다. (본문중에서 p156)


인류가 농사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을때는 이미 농사 자체가 단순하게 

식량을 생산하고 그것을 자급자족해서 생존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것은 끝이 난 건지도 모른다.

게리 폴 나브한이 말하고 있는 식량 문제는 곧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우리가 깨끗한 물 한모금을 마시는 것도 정부의 정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의 

목 안으로 물을 넣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인 것이다. 결국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구 안에서

계속해서 황폐화되는 지구, 이런 현실이 바로 각 나라의 정책적인 식량안보에 힘쓸수 밖에 없는

현실로 닥쳐있는 것이다.



짐머는 여기서 붉은 여왕을 잡으려 애쓰는 앨리스에게 "다른 길로 가보는 게 어때요?"하고

일깨운 장미꽃의 충고를 되새깁니다. 짐머가 이 이야기를 꺼낸 건 성의 탄생을 설명하기

위해서이지만, 나는 붉은 여왕을 잡기 위해선 죽어라 뛰는 것보다 방향을 바꾸는 발상의 전환이

중요하듯 기생충을 잡는 데도 "다른 길"로 가보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본문중에서 p174)


우리에게 어떤 문제라는 것이 주어지면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

하게 된다. 단지 이 문제 자체가 올바른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주어진 문제를 풀기위해서만

오로지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더 좋은 방법이나 다른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라는 프레임에 갇여버려 문제를 풀때까지는 결코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레드퀸의 말처럼 문제 속에서 계속해서 뒤쳐지지 않게 달려가고 

있는 내 자신조차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글을 적으면서도 지금 나의 하루하루가 이 레드퀴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본다. 


마녀의 연쇄독서는 조금은 새로운 형태의 독서법에 대해서 대중적인 가능성을 논하기에는 

조금 성급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책에 대해서 우호적인 성향의 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환영할만한 독서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에 대해서만 취사선택하는것이

작금의 현실이지만 이 연쇄독서법이 바로 그런 남들에게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독서법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든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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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생소한
인공지능이라는 영역의
하지만 인간만의
영역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 그런 책

 

 

 

 

 

 

 

 

 



가장 인간적인 인간 / 브라이언 크리스찬 / 책읽는수요일

 

 

오늘날의 컴퓨터의 의미는 디지털 컴퓨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인간 컴퓨터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쓰인다. 즉 20세기 중엽에는 첨단 수학 장치를 가리켜 "컴퓨터 같다"라고
말했다면, 21세기에는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인간을 가리켜 "컴퓨터 같다"라고
말하게 된 것이다. (본문중에서 p30)

 

최근에는 더욱 진보된 디지털 기기들이 어떤때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기계라는 생각을
넘어 하나의 새로운 개체로 우리앞에 놓여있는 그런 느낌이다. 마치 영화에서 보았듯
그들이 언젠가는 자신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존재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말이다.

 

 

'번영'이라는 말에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는 측면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시했던 것처럼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우리의 기대와
잠재력을 실현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밖에도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유데모니아는
우리의 주관적인 감정과 무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점에서 유데모니아는 차라리
'행복'보다 '성공'과 가까운 면이 있다. (본문중에서 p87)

 

이 책이 뢰브너상이라는 컴퓨터와 인간간의 대화를 통한 누가 더 인간다운 모습을 보이는지
에만 초점을 맞추어 쓰여졌다면 아마도 끝까지 읽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
자신만의 가장 인간다운 인간이 무엇인지를 정의하기 위한 여러가지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위에 설명된 유데모니아를 통한 인간만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처럼.

 

 

나는 이제 우리 인간이 컴퓨터에게 신체를 되돌려주기는커녕 우리 스스로도 신체 포기각서를
쓰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감각을 불신하는 플라톤적이고 데카르트적인 전통 속에서
우리가 컴퓨터를 만드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점점 더 컴퓨터를 닮아가려는 의도와 결부되어
있는 듯하다. 이렇게 볼 때 컴퓨터는 우리가 우리 자신한테서 받은 신체 포기각서와도 같다.
(본문중에서 p112)

 

우리에게 스마트폰이라는 물건이 허락(?) 된 이후로 우리에게는 터치라는 감각이 새로운
형태로 각인되었고, 지금의 어린이들에게는 그저 당연한 감각으로 몸안에 내장되었다.
지금의 젊은세대에게 손글씨라는 매체가 갈수록 어색한 것이 되고 있듯 미래에는
인간에게 있어 그러한 고유의 감각들이 점점 더 생소한 것으로 규정될 것이다. 아주 먼
미래에는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는 그런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만해도
소름이 돋는다.

 

 

'영혼이 없는' 동물을 경멸하는 태도와 우리 자신이 이런 '짐승'들의 후손이라는 점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안으려는 태도는 오늘날 여러 방면에서 점점 더 수세에 몰리고 있다. 세속주의와
경험주의의 발전, 인간 이외의 다른 유기체들이 지닌 인지적 또는 행동적 능력들의 재발견,
어떤 의미에서는 침팬지나 보노보보다도 훨씬 더 영혼이 없어 보이는 현대인의 모습 등은
이런 변화의 징후로 해석될 수 있다. (본문중에서 p124)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안에서는 인간이 가장 고등동물로 자리를 잡고 있지만 인간이 만든
영화인 '혹성탈출'과 같은 것에서는 바로 그런 것들의 예외성에 대해서 상상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단순하게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 그런 컨텐츠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외계인에 대한 호기심처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상대적으로 지금 살아가는 문명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자아의식의
재정립은 아직 멀고도 먼 길로만 보인다.

 

 

직업 가수인 그녀는 흔들림 없이 노래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공연
때마다 미세하게 감지되는 그 날만의 독특함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 자신이 터득한
기술에 균열이 생기면서 자신을 빠져들게 만드는 뜻밖의 순간들, 그래서 사물을 새롭게 보고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살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라 하겠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본문중에서 p168)

 

음악이라는 것이 바로 인간이 만들어낸 창작물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것 중에 하나라고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레코드판의 따뜻함을 논하다가 어느순간 CD를 거부감없이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에 mp3와 같은 디지털 파일을 통해서 음악을 감상하듯 우리가 듣는
대부분의 음악들은 기계가 만들어낸 패턴화된 전자음악들도 채워지기 시작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미세한 변화에 대한 것들도 이제는 기계가 만들어낼 수 있으니 그 안에서도
다시 인간만이 발휘할 수 있는 예술적인 특질을 찾아내는 것이 미래의 인간들의 몫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은 인간과 로봇의 대결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의 인공지능 이야기를 본연의 인간에
대한 특질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어렵지만 흥미로운 그런 책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분야들이 영화 '터미네이터'와 같은 그런 기억으로 또, 국내에서는

사이버가수 '아담'과 같은 그런 시도들에서부터 최근에 와서는 애플의 아이폰 등에
적용되는 시리('Siri')와 같은 인공지능적인 알고리즘을 가진 그런 인간을 닮은 기술들을
통해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기능적인 의미로만 다가왔던 것들이 이제는 우리의 생활 깊숙하게 침투된다고
생각하니 더욱 인간이라는 존재를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당신은 얼마나 인간다운 인간인가?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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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라는 것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

 

 

 

 

 

 

 

 

 


두려움의 열가지 얼굴 / 한스모르쉬츠키 / 애플북스

 

 

한번 생각해보라. 어느 정도의 개인적 불안은 작업을 수행할 때 전력을 강화시켜 몸과 정신이

최고의 능률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게 한다. 그리고 집단적 불안은 환경오염이나

지구 혹사, 유전자 변형, 원자력 남용과 같은 사회 발달의 부작용을 해소시킬 수 있다.

(본문중에서 p17)

 

현대사회라는 장소가 우리에게 두려움이라는 녀석을 복잡함 만큼이나 다양하게 파고들어

괴롭히는 것 같다. 물론 위의 저자의 말처럼 두려움이라는 것이 적당한 긴장감처럼 우리에게

좋은 기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듯 이 책에서 다루는

장애의 형태로 나타나면 나약한 인간에게는 그저 '병'이라는 이름으로 남을 뿐이다.

 

 

공황발작을 극복하는 열쇠는 불안에 현실적으로 대처하는 법을 배우고,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에서

항상 눈길을 돌리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서 모든 회피 전략을 포기하는 법을 서서히

배워야 한다. 온갖 회피 반응을 통해 결국 자신의 불안 발작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문중에서 p53)

 

저자가 말하는 두려움에 대한 문제 해결의 열쇠는 두려움에 맞서는 것이다. 이 책의 전반적으로
정공법을 통해서 두려움을 털어내기를 주문하고 있고, 심리학적인 자기최면에 의한 자가치료법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최근에 자기계발 서적에서 많이 만나보았던 자기최면에 일종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극장 등의 장소에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는 영화를 상영하는 방법 등을 통한 치료를

설명하고 있다.



무비판적인 긍정적 사고의 의미에서의 '해피엔드'를 고안하기보다는, 예측하던 문제가 발생할 시

수긍할 수 있는 생존 전략 사고를 전개할 수 있도록 자신의 상상력을 단련해야 한다. 건설적인

상상은 위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첫 발걸음으로서 오늘날 다시 인정받고 있으며 더 이상

현실도피로 간주되지 않는다. (본문중에서 p108)

 

상상력에 대한 단련, 지속적으로 이런 명상이나 최면형태의 심리치료가 혼자서 가능할지는 약간

미지수로 보이지만, 단련이라는 수준의 형태에 다다르려면 아마도 정해진 장소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음악을 틀어놓고 어떤 의식을 치르듯 행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들이 결전을 앞두고 성당이나 자신만의 기도를 할 수

있는 공간에서 결의를 다지는 모습 또는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모습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된다.

 

 

불안을 없애려 하지 마라. 이것은 공연히 불필요하게 많은 힘을 소모시킬 뿐이다.
불안으로부터 도망가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라. 그리고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라.

'불안아, 네가 다시 찾아왔구나. 나는 널 이미 잘 알고 있어. 네가 나에게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 공황발작은 넘실대는 바다의 파도와 같다.(중략) 단계적 훈련은

공황발작으로 거의 이어지지 않는다. (본문중에서 p183)

 

이 책의 저자가 두 사람인데 그중 한 사람은 한명의 저자를 치료한 의사이다.

바로 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치료법이기에 더욱 신뢰감이 간다. 하지만 치료법 자체가 다소

추상적이거나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기가 어려워보여 대단한 각오와 함께 끝없는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저자는 자신의 강박행동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일기를 쓰듯 매일매일 자신을 관찰하고

써내려가기를 주문하고 있다. 결국 자신의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본적인 치료법에 따라서 자신이 직접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노력을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두려움이라는 부분을 심리치료라는 방법을 통해서 극복해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으로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분야의 책이다. 물론 최근에는 '광장 공포증' 등의

각종 심리적인 질병의 병명이 일반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런 질병이 자신에게도 올 수 있다는

인식은 부족해보인다. 이 책에는 자가진단 할 수 있는 질의들도 다양하게 있으니 스스로

셀프테스트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본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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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집단상담

역시 문화의 차이인가

한국에서도 이런 상담의

활성화가 필요한 것일까










가족을 위로 한다. / 칼 휘태커 / 21세기북스


가족치료라는 주제자체가 우리사회에서는 생소한 단어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최근에는

예전과는 다르게 심리치료라는 방법이 매스컴을 통해서 어느정도 저변확대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 대상이 자신의 가족이라고 생각하면 선뜻 나서 치료를 받겠다는 가족은 별로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그런 어려운 과정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하지만 아무리 문제가 있다고 해도 가족들은 익숙하고 예측 가능한 자신들만의 세계에 의존하려

한다. 가족이 익숙하지만 고통스러운 세계에서 벗어나서 가족관계를 재구조화하는 데는 확고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족의 위기는 형태, 형식 및 원리가 있고 가족치료자들은 그것을

규정할 수 있어야 한다. 가족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하며, 그래서

그들은 우리를 시험한다. (본문중에서 p34)


우리가 내부의 문제를 내부자 들만의 의견으로 풀어가기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기마련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에 외부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객관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족 중 누군가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 시각은 주관적이고 감정에 치우칠 수 밖에 없어보인다. 바로 이런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전문가적인 시각으로 가족을 치료할 수 있는 손길인 것이다.



환자가 지속적으로 심리치료를 받고 자신의 증상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치료 접근법에 대한 우리의 의혹은 이들이 그리

효과적이지 않다는 걸 시사하는 많은 연구결과에서 입증되고 있다. 통찰력은 과학자

프로이트에게는 매우 유용한 것이었지만 환자들에게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본문중에서 p101)


그렇다.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지하게 되어도 환자 자신이 아무런 노력도 아무런

의지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일반적인 수술 등의 치료와

심리치료의 다른 점이다. 결국 사실이라는 부분의 인식 이후에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의 심리를 감성을 매만져줘서 평온한 상태로 이끌어 줄 수 있는 무엇이 환자자신의 노력과

함께 만나는 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우리의 발언에 가족이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사실은 좋은 예후이다. 이것은 가족이 스스로를

'감시'하는 것을 한동안 멈추고 우리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외부인이기

때문에 가족이 보지 못한 관계유형들을 감지할 수 있다. 가족이 이러한 상호작용 유형들을 감지하지

못한 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의 갈등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휘말려 있기 때문이다.

혼란은 가족이 우리에게 그들의 싸움을 감시하고 해석하는 역할을 맡기면서 가족치료에 한층 더

깊이 참여하게 되었다는 증거이다. (본문중에서 p162)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한다는 것은 이미 다른 관계와는 다르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문제를 풀어나가기 어려운 것 같다. 최근 EBS의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주로 부부의 문제 또는 직장상사와의 문제, 고부갈등 등을 풀어나가는 모습을 보는데 그 과정

을 보면 정말 쉽지 않은 풀어야할 근본적인 문제들이 너무나 많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

결국 당사자에게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상처가 될 수 있는 치부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드러내어

문제를 분석하고 치유해 나가지 않으면 결코 치료할 수 없는 그런 상처가 바로 가족간의 갈등이고

문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일정한 형식'에만 몰두하다가 5년쯤 지난 후 자신의 일에 냉담해져버리는 가족치료자들을 수도

없이 목격했다. 가족을 단순히 하나의 사례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고 작업장의 일꾼처럼 기계적인

상담을 되출이하면 가족치료자들은 그 기법에 지쳐갈 수밖에 없다. 가족치료와 함께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정체된 채 기계적으로 상담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칼과 나도 기법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우리는 기법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본문중에서 p376)


우리가 이런 가족치료를 진행하는 방법에는 최근 TV를 통해서 익숙하게 보아온, 그림을 통한

심리치료나 연극을 통해서 치료하고 또 자신의 과거를 통해서 치료하는 방법들에 익숙해져 왔다.

하지만 방법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의 치료를 도와줄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이끌어 줄 수 있는 전문가도 있지만 결국 치료라는 과정의 주체가 되고 그 치료를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가족간의 노력과 의지가 우선이 되는 것이다.


나를 위한 치료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가족이라는 '우리'를 위한 치료라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치료의 포인트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가 큰 병을 치료할 때는 여러가지

치료기구와 또 의사의 수술 등을 통해서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결국 빠르게 회복하고 또 이후에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환자 본인의 노력이 필요하듯 가족 치료라는 심리적인 치료가 필요한

부분은 그런 가족 개개인의 노력이 어떤 치료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느끼게 되었다.


이 책은 한국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가족치료'라는 과정을 실제 치료과정의 가족을

모델로 삼아 저자의 경험을 그대로 풀어가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여러가족구성원

들 간의 관계가 단순하게 문제를 풀어가는 치료법이 아닌 그들간의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에서

출발하고 그것이 가장 최대의 해결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과거보다 살기 좋아졌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황폐해져만 가고 있는

현 세태에서 가족간의 갈등이라는 부분을 치료라는 형태로 풀어간다는 데에 더욱 흥미가 가는

책이다. 책의 방대한 분량만큼 읽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뭔가 가족간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느낀다면 한 번은 읽어볼만한 책이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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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재미있는
읽기 쉬울줄 알았는데

나름 어려운 책

 

 

 

 

 

 

 



지금 나는 고민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중이다 / 엘리엇 코헨 / 애플북스


 

만약 당신이 의무적으로 걱정하는 성향의 사람이라면, 제발 이책을 읽은 이후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강박적인 걱정 습관을 극복해야겠다"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다시 말해,

본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의 안녕을 위해서라고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뜻이다.

그러니 부디 '나 자신을 위해 의무적인 걱정을 극복해주길 바란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도 그 혜택을 입게 된다. (본문중에서 p19)

 

가족이나 직장이라는 조직 단위에서 보았을때,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 쉽게 말해 신경쓰이는 일이 되어버린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고, 좋은일이 생겨도,

걱정이라는 녀석이 개입하면 무엇이든 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곤 한다. 결국 걱정을 최소화하는

과정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자기 희생적인 생각으로 의무감에 넘쳐 걱정을 해대는 사람은 이성적으로 걱정을 멈추려 하기 보다는 세상이 완벽하거나, 거의 완벽해지길 요구한다. 만약 이것이 당신의 모습이라면, 당신은 걱정만 하다가 늙어갈 게 분명하다. 평생 놓아버릴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걱정을 안겨주는 문제 상황을 밤낮으로 찾아 헤매게 될 테니 말이다. (본문중에서 p32)

저자는 걱정이라는 부분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완벽주의자의 자세로 말하고 있다. 완벽주의자에게 걱정이라는 존재는 결국 완벽하다 라는 상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는 걱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사실상 이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또 그럴수도 없다. 단지 완벽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자세만이 있을 뿐이다.

 

세상이란 우리가 아무리 간절하게 원하더라도 절대 모든 것을 미리 결정할 수 있는 곳이 아니며,

반드시 이상적인 곳도 아니다. 오히려 별다른 놀라움이나 도전할 만한 것도 없고, 그다지 흥미로울것도 없는 다소 지루한 장소라 할 수도 있겠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는 애슐리의 무능함이 상황에 따라선 절망해 늘어져 있기보다는 삶을 즐겨야만하는 이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본문중에서 p79)

그렇다. 때로는 세상에서 악이라는 존재가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정말 선한 것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하지만 그런 세상을 상상해보면 정말 아무런 기대도

없이 새로울 것도 없고 또 노력할 필요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 그 자체가 될 것 같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지금의 세상을 조명하면 이렇게 예측할 수 없고 변화무쌍한 세상이 우리에게는 더 살만한 세상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 앞에서 삶조차도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실망스러운 꿈, 무산된 희망, 헛된 경험'등으로 정의할 수 있을 뿐이다. 사르트르가 말한 바에 의하면 우리는 자아 행위의 총합이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결국 충족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본문중에서 p123)

결국은 저자가 말하는 고민하는 사람들은 걱정하는 시간에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행동을 통해서 걱정을 해결하는 것을 실행할 수 있고, 또 그 일에 몰입해서 걱정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자신을 제어하는 힘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걱정이라는 것도 자신이 직접 몰아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결정을 하든 어느 정도의 위험부담은 지고 갈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고, 그 결정에 따른 혜택과 위험부담을 저울질해야 한다. 이 점만 정확히 이해한다면, 적어도 확실성을 제공하지 않는 세상에서 그것을 요구해야 하는 불안한 심리만큼은 피해 갈 수 있다. (본문중에서 p134)

확실성과 불확실성. 때로는 그런 부분을 판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자신이

고민하는 대상에 대해서 지금 당장 또는 근시일 안에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 걱정거리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존재

라면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이 책의 표지처럼 매일밤 잠을 못 이루게 될 것이다.

 

실제로, "내가 나쁜 일을 했어"와 "나는 나쁜 사람이야"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만약 나쁜 일을 함으로써 나쁜 사람이 된다면, 우리가 모두 나쁜 일을 해본 경험이 있으므로 당연히 모두가 나쁜 사람이 된다. 그러니 행위와 행위자를 구분하자. 비록 내가 하는 행위의 가치는 그렇지 않더라도, 나의 자아 가치는 늘 조건이 없어야 한다. (본문중에서 p156)

 

누군가는 위의 두문장을 말장난이라도 폄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장난 같은 말들에도

각각의 의미가 숨어있고 그 의미는 우리의 무의식 안에서 뭔가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단정적으로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포기하기 보다는 부분적으로 잘못한 부분은 제대로 반성하고

자신의 자아 자체에 대해서는 꼭 껴안아 주자. 행위와 행위자를 구분하라는 말. 기억해야 겠다.

 

비록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해도, 아는 바대로 행동할 수는 있다. 이것은 인간이 아무리 오랫동안, 그리고 아무리 힘들게 지혜를 찾아 헤매더라도, 세상에는 늘 인간의 능력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진리가 남아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지식의 우물 밑바닥에 도달해서가 아닌, 합리적인 노력을 통해 도달한 곳에 마지노선을 긋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신, 자기 자신에게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자. (본문중에서 p189)

정말 마음에 와닿는 말이다. 아는 바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말.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깨닫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깨달음의 부작용은 자신의 부족함을 매일 깨닫기 때문에

자칫 의기소침해지고 무엇인가를 말할때 자신감이 없어질 수 있다. 그럴수록 아는 범위 안에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자아를 불러내어 표출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고민없이 당당하게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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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프랑스 사람일거라는

말도안되는 선입견을 심어준...

정말 작아보이는 분야에도

300페이지짜리 책이 나온다..

놀랍다...









웃음의 심리학 / 마리안 라프랑스 / 중앙북스


양육자가 반응이 없는 경우는 아기가 감정적인 부담을 져야 한다. 주요 양육자가 안정적이지 못하거나 무관심한 경우, 아기의 감정중추는 얼어붙고 만다. 우울하거나 반응하지 않는 엄마에게서 태난 아기들은 그들 스스로 우울한 사람으로 자란다는 상당한 사례와 증거가 존재한다. 웃음이 줄어들면 그만큼 식욕과 건강하게 잠을 자는 능력도 떨어진다. (본문중에서 p71)


이런 글을 읽을때마다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물론 자신의 아이를보고 어찌

웃지 않겠냐고 누군가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족으로 하루종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웃는

시간보다는 그렇지 않은 시간이 더 길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부모로서 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웃기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진정성을 가지고 지속하기는 나름의 마음자세를 고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이라도 자신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이면, 전에 알고 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피실험자들에게 유명인 사진과 일반인 사진을 보여주었다. 각각 절반은 웃는 얼굴을 절반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피실험자들은 유명인이든 일반인이든 무관하게 웃고 있는 사람은 전에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웃음은 이미 방 안에 한 발을 미리 내딛고 있는 것이다.
(본문중에서 p96)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한국인들은 웃음에 인색하다. 모르는 사람을 향해서 웃을을 지어

보이는 것은 단지 아이들에게 일 뿐. 좁은 밀폐된 공간에서 그 어색함은 극에 달한다. 예를 들면,

엘리베이터와 같은 공간이 그렇다. 필자의 경우도 불특정 다수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는데에 어려움

을 느낀다. 어릴적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돈도 안드는데 인사라도 열심히 하라던 것처럼, 처음보는

이들에게 환한미소를 통해서 친근감을 주는 것도 결국 같은 의미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울증을 겪는 아빠들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긍정성억제'다. 우울증을 앓는 아빠는

아이는 물론 가족 구성원 모두 자신의 행복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 아이가

진정으로 즐거움을 표현하는 순간에도 부정적으로 반응함으로써 기를 꺾어버린다. 심지어 이러한

긍정성억제는 아빠가 개입하지 않는 엄마와 아이의 상호작용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다. 결국

아빠의 우울증으로 인해 아무도 행복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조용한 가족'이 탄생하는 것이다.

(본문중에서 p129)


아마도 우리의 주변에 이런 가족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이런 가족이 우울증을 동반해야만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라도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어려웠던 과거를 지나 각박한 현재로의 긴터널을 지나고

있다. 바깥세상이 아무리 어렵다한들 가족끼리는 즐겁게 지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왜 웃음도 잃어버린채 바쁘게 살아갈까를 생각해보면, 결국은 가족끼리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이다. 결국은 그 자체가 일상아닐까. 어릴적 '조용한 가족' 아래서 자라났다면 과감하게 떨쳐버리자.



보톡스 시술 후 우울증 수치가 더 높아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 실험상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이 실험과 우울증환자를 대상으로한 이전 실험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이전 실험은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이 실험은 그렇지 않았다. 보톡스는 단순히 찡그리는 표정만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밖의 일상적인 감정표현까지도 가로막는다. (본문중에서 p143)


의학적으로는 사실관계를 확인해 봐야겠지만, 최근 배우들은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말을하던 감독처럼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내는 표정이 우리의 감정까지 제어한다고 하니 놀라울 뿐

이다. 보톡스와 우울증의 상관관계. 세월이 흘러 의술이 더 발전하면 표정마저 만들어낼 수 있는

보톡스가 나오지 않을까? 필자는 자연스러운 자연의 것이 좋은 것을 보면 아직 구식인가보다.



'샤덴프로이데'는 남의 불행을 고소하게 여김으로써 느끼는 즐거운 감정을 일컫는 독일어다. 샤덴

프로이데 역시 양면적 웃음을 유발한다. 독설로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인 앰브로즈 비어스는 샤덴프로이데 측면에서 근본적인 행복을 이렇게 정의했다. '행복이란 남의 불행을 음미할 때

솟아나는 쾌감이다.' (본문중에서 p173)


웃음이라는 것이 좋은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비웃음 또한 웃음으로 정의하고 있다.

각박한 세상으로 대표되는 현재에서 하루에도 몇번씩 인간관계에서 논쟁을 거쳐 총칼없는 전투를

하다보면 그 안에서 비웃음으로 대표되는 양면성을 드러내게 된다. 남의 불행자체를 자신의 즐거움

으로 승화(?)시키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니 오히려 건강에는 좋지 않을까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



기분이 좋을 때, 긍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아이들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세일즈세계에서 판매는 고객이 거절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격언이 있다. 서비스세계에서 진정한 서비스는 직원 스스로 웃을 기분이 나지 않을 때 시작된다. 사회과학자들은 이러한 일을 감정노동이라고 부른다.

(본문중에서 p218)


우리가 일을하는 공간안에서는 웃기 싫어도 웃어야 하는 경우가 하루종일 발생한다. 요즘은 서비스

라는 직종을 별도로 분리하기 어렵다. 하다못해 고객을 직접 만나지 않는 일이더라도 자신의 상사를

통해서 의사소통을 해야 하기 때문에 협상의 카드로 또는 인간관계를 위한 비장의 무기로 웃음을

전면에 내세워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하고보니 감정노동이라는 용어가 참 잘 어울린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중에 하나인 웃음이 결국은 노동의 연장선상이라니 조금은 서글프다.



미국 만화와 일본 만화에서 서로 강조하는 부분이 다르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일본 '아니메'는 미국 애니메이션보다 대개 얼굴표정을 적게 사용한다. 이 때문에 일부 미국의 영화비평가들은 일본 애니매이션은 투박하고 섬세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섬세함의 차이라기보다 얼굴표정을 어떻게 표현하는냐 하는 각 문화권의 축적된 지식의 차이다. (본문중에서 p278)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안에서의 학문의 그 디테일은 이제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것 같다. 각 문화권의

만화에서 표현되는 웃음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있는 저자를 보면서 웃음이라는 하나의 주제 안에서도

각자의 문화와 과학 그리고 감성적인 무엇인가가 계속해서 머리속을 돌아다니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웃음이라는 주제는 결국 우리의 생활 그 자체다. 가식적인 웃음과 진정성이

담긴 뒤센웃음에 대해서 시작하지만 저자는 웃음에 대해서 종합적인 지식을 폭넓게 전달하고 있다.

실제 사람의 근육을 통해서 시험한 결과에서부터 각 문화권의 웃음의 차이 등 웃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할 수 있는 다양한 연구결과를 담고 있는 책이다. 필자는 이 책을 읽고나서 거울을 보며

어색한 웃음을 마주하지 못한채 책장을 덮어본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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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심리학이라는 학문이

무엇인지 살짝 이해되는듯

역시 읽고나서 시간이 필요한

책이 있는 것 같다.










마틴 셀리그만의 플로리시 / 마틴 셀리그만 / 물푸레 / 2011년


자신의 삶에 긍정적 사건이 일어난 이유를 적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 할 수도 있지만, 부디 일주일 동안

끈기 있게 시도하길 바란다. 점점 더 쉬워질 것이다. 당신은 덜 우울하고 더 행복하고, 지금부터 6개월

후에는 이 연습에 중독될 수도 있다. (본문중에서 p66)


이 책에서는 긍정적인 사건을 자신의 노트에 적고 그 사건이 일어난 원인을 생각해 보는 행동을

권장하고 있다. 우리는 보통 문제에 대해서 그 원인을 찾고 해결방법을 고민하는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물론 너무 생각하지 않아서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하지만 긍정심리학에서의 주장은 긍정적인

사건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생물정신의학과 임상심리학의 숨기고 싶은 첫 번째 비밀은 바로 두 가지 모두 치유 개념을 포기했다는 것이다. 치유는, 설사 가능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보험 회사는 오직 짧은 치료에만 보험금을

지불한다. 그래서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는 전적으로 단기 위기관리이며 표면적 치료에 지나지 않는다.

(본문중에서 p81)


기존의 약물치료나 심리치료 자체에 대해서 단기적인 임시방편일 뿐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결국

중장기적인 자신의 행동변화 및 심리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긍정심리학의 범위 내에서 저자가 말하는

플로리시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처럼 우울증에 의한 여러가지 우발적인

행동들이 만연할때 이런 방법들은 체계적인 교육 등을 통해서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인 체계가

아쉬워진다.



이제는 학교에서 웰빙을 교육해야 한다. 그 타당한 이유로는 첫째, 현재 우울증이 만연하고 있으며

둘째, 지난 두 세대에 걸쳐 행복이 아주 조금 증가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로 웰빙의 증가는

교육의 전통적인 목적, 즉 학습을 향상시킨다. 긍정적 정서는 관심의 범위를 넓혀주고 창의적 사고와

포괄적 사고를 높여준다. (본문중에서 p127)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설명하고 있는데, 바로 치료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멀리

바라보기 위한 교육이라는 체계에 긍정심리학에 대한 주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로부터 웰빙

이라는 주제를 교육에 도입한다면 심리적인 치료이전에 교육을 통한 창의적 사고와 포괄적 사고를

통해서 웰빙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하니 뭔가 새로운 주장으로 보인다.



영어에서 긍정적 정서를 묘사하는 단어는 고작 80여 개 정도다. 이것을 확인하려면 우선 인터넷 영어

사전 사이트로 가서 '기쁨' 같은 단어를 찾는다. 그 다음에 유의어를 모두 찾고, 다시 그 모든 유의어의

동의어를 세다 보면 80여 개의 단어를 거쳐 결국 '기쁨'으로 돌아간다. 엄청난 양의 페이스북 데이터

에 매일 접속해서 긍정적 정서 단어의 수를 센 다음, 그것을 해당 국가의 웰빙을 추정하는 첫 번째

근사치, 또는 어떤 중요한 사건의 작용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본문중에서 p147)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긍정심리학의 분석을 위해서 소셜을 활용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소셜미디어의 대표주자인 페이스북을 통해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형성을 위한 수많은 자료의 분석

사례를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단순하게 페이스북을 통해서 적혀있는 단어분석을 통해 긍정적인

정서를 정량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부자연 스러워 보이기는 하지만 기초적인 자료로 활용하기에는

무리가 없어보인다. 일반적인 학문의 범위에 머무르기 보다는 트렌드를 반영하는 모습이 좋아보인다.



더 많은 성취를 가능케 하는 진짜 요인은 더 많은 노력이다. 노력이란 과제 연습에 소비한 시간의 양,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의 시간을 이른다. 과제에 소비한 시간은 두 가지 방식으로 성취를 향상

시킨다. 즉, 기존 기술과 지식을 승법적으로 증가시킨다. 또한 기술과 지식을 직접 증가시킨다.

가장 좋은 소식은 노력은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본문중에서 p185)


요즘은 노력도 중요하지만 일에 대한 효율이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또는 밀도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하고자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선은 기본적인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SF영화에서나 본 것처럼 읽기만 하면 모든 것을 외우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것은 없다는 것이다. 너무나 흔하게들 인용하는 1만시간의 법칙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능력에 알맞은 기본적인 시간의 투자와 노력은 수반되어야 더 많은 성취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절대 무기력해지지 않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가 무기력하게 만들 수

없었던 사람들이 부정적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을 체계적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자신의 겪은 좌절의

원인이 일시적으로 변할 수 있고 지엽적이라고 믿는 사람은 실험실에서 쉽게 무기력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본문중에서 p275)


살아가면서 우리에게는 사실 행복한 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견디기 힘든 시련들이

언제든지 올 수 있다. 때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무엇인가에 눌려 무기력해있는 자신을 발견하면 누구든

어떤 일이든 쉽게 포기해버리기 쉽다. 위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에서 극복의

포인트를 빠르게 찾아내는 것이 무기력을 이겨내는 방법이라 말하는데 사실 방법적으로는 어려워

보인다.



플로리시의 엄밀한 기준은 세 가지 핵심 요소인 긍정적 정서, 몰입, 의미는 진정한 행복 이론에서

취한 것이다. 하지만 그 밖의 요소들을 추가함으로써 웰빙 이론의 다섯 가지 요소에 근접했다.

그들의 연구에 성취를 한 가지 요소로 추가해서 높은 수준의 긍정적 정서, 몰입, 의미, 긍정적 관계,

긍정적 성취를 갖춘다면 바로 내가 주장하는 플로리스의 기준이 된다. (본문중에서 p345)


플로리시에 대한 정리다. 이 책에서는 위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 플로리스의 기준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지면이 어려운 용어와 연구결과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서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기존의 연구적인 성과의 나열보다는 풍부한 근거자료와 다소간

긍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어, 약간은 지루하지만 새로운 시각을 발견한다는 재미로

접근하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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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을 위한
도올선생의 추천사보다는
일반인을 위한 중국철학이
그나마 쉽게 녹아있는 책









중국의 품격 / 러우위리에 / 황종원 / 에버리치홀딩스 / 2011년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자세하게 접할 기회가 없어서인지 그저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들 조차도 잘 알지 못했는데, 이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그들의 철학적인 발자취를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시간이 흐른 뒤 관련서적과 함께 다시 읽어보면 좋을 듯 생각된다.

러우 선생이 "상박배신교, 하방배물교"라고 표현하는 중국인문정신의 가장 수긍하기 어려운
과제상황은, 그토록 훌륭한 인문정신을 왜 제도적으로 구현하지 못했냐는 것이다
신이라는 절대적 권력을 제거했다면 당연히 인간의 권리를 임의로 침해할 수도 있는 절대적
군주권력을 제약하는 제도적인 장치를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마련했어야 했다.
(추천사중에서 p14)

인문정신의 제도적 구현. 어려운 주제이다. 사실 우리가 실생활 안에서 만나는 법, 제도라는
부분은 사람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형평성에 어긋나거나 현실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결국은 우리들을 위한 법이고 제도인 것을.

제3세계의 대축인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하여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과시해야만 하는 많은 숙제를 떠안고 있다. 그 방식은 반드시 기존의 안일한 자유민주주의적
클리쉐가 아닌 중국인문정신에 기초한 새로운 그 무엇이어야 할 것이다.
그 "무엇"이 과연 무엇이냐? 이러한 문제를 러우 교수는 "품격"이라는 테마를 통해 매우
차분하게 상식적으로 쉽게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추천사중에서 p15)

품격이라는 테마로 접근하는 것. 결국 핵심은 중국의 인문정신에 기초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와서 인문정신이라는 테마가 서점가에도 많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 어려운 주제를
차분하게 상식적으로 쉽게 접근한다는 자체가 어렵지만, 추천사 안에서는 나름의 기대를
심어주고 있다.

중국문화 특유의 품격은 바로 '인문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인문정신에는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우선 인문은 신문 및 물문과 상대되는 개념이다.
중국인들이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정신적인 삶이지 신이나 물질의 지배를 받는 삶이
아니다. (본문중에서 p21)

물론 현대사회 자체가 물질에 대해서 많은 지배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으나, 최근에 와서는
그런 것들이 결국은 정신적인 부재를 통해서는 채워질 수 없음이 많이 강조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있다. 넓은 아파트에서 좋은 음식을 먹어도 속된말로 밥먹고
똥싸는 데에만 힘쓴다면 그 삶이 풍요로운 삶인지는 다른 말이 필요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정신적인 고통은 내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수많은 외적인 것들, 특히 물욕에 의해 지배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되었을 때에는 다시 그것을 신에게서 구한다.
하지만 인간의 문제는 자신이 지닌 능동성을 발휘하여 인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본문중에서 p26)

물론 사람은 주변환경에 대해서 지배당하거나 영향을 받는 존재다. 그 환경을 잘 이용하고
살아간다면 정말 이상적이겠지만, 정신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철학이 없는 경우는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물론 물욕이라는 측면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원칙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자기자신이 없다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100년 전, 중국과 서양문화의 시대적 차이에 대한 주목이 나름대로 타당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가 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각 문화의 유형상의 차이입니다.
그러한 유형상의 차이를 알아야만, 우리는 다른 문화들 상호 간에 서로 보완할 것이 무엇인지
더욱 훌륭하고 능동적으로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중에서 p60)

최근에 많은 서적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서양과 동양은 서로의 문화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서로가 서로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고 동경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우리 동양사람들은 서양문화에 대해서는 많이 접하고 이해하기 시작했지만,
상대적으로 우리의 문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결국은 지나침없이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한국보다도 괜찮고요, 한국, 그리고 북한은 민족 정서가 매우 깊지요.
그래서인지 한자를 없애고 한자 상용을 금지시켰는데, 이로 인해 오늘날 한국과 북한의
젊은이들은 고대 문헌을 읽지 못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게 바로 역사의 단절이 아닐까요?
(본문중에서 p67)

어린시절에 한자학습의 중요성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시던 우리 아버님께 내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참 버릇없지만 '이제는 한문 잘 안써요. 다 컴퓨터가지고
하고, 학교에서도 영어원서만 보는데 한문이 무슨 필요겠어요'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말이 참 부끄럽기 그지없다. 세월이 흐른 뒤 이제서야 인문학 서적과 중국철학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나를 보면서 이것이 역사의 단절을 이어가지 위한 고통의 과정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중국의 인문정신은 '아래로 물질에 대한 숭배를 막는 가르침'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이 점에 매력을 느꼈던 거지요. 20세기 이후 서양에서 새로운
인문주의를 탐색하는 목적은 물질에 대한 숭배를 막는 가르침을 무한히 확대하려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17세기와 18세기에 서양에서 신의 전능함을 깨뜨리려고 했던 상황과 정확히 상응합니다.
서양에서 두 차례 주창된 새로운 인문주의는 모두 어느 정도 중국의 전통문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서양인들은 '위로는 신에 대한 숭배를 중시하지 않고 아래로는 물질에 대한 숭배를
막는 가르침'이라는 중국 전통문화의 인문주의적 가치를 발견했던 겁니다. (본문중에서 p95)

아마도 역사적으로 되돌아봐도 서양과 동양은 서로간의 문화교류를 통해서 서로의 철학에
대해서 보완하고 발전을 되풀이해 왔나보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중국의 인문주의적
가치.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중국의 품격에서의 핵심이라고 한다.

사실 중국문화의 인문적 사유방식은 개별성을 강조하는 사유입니다.
그것은 동태적이고 총체적이며, 연관적이고 무작위적이며, 종합적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인 사유방식이 추구하는 것은 일종의 보편적인 적합상입니다.
보편적으로 유효해야만 과학인 것입니다. 어떤 이가 자신이 오랜 연구 끝에 발명을 했는데,
하나에만 적합하고 다른 것에는 적합하지 않다면 그 과학은 거짓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인문적인 탐구와 사유방법은 개체와 차별화된 것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곤 합니다.
(본문중에서 p116)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계속해서 정답만을 강요해왔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정답이 존재하고 그 정답을 쫓기위해서 학생들은 수많은 책들을 읽고 암기해 왔는데
결국은 이런 학습이 자신이 만나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는 대처능력을 제로로 만들어버리는
곧, '자립'이라는 부분에서 그 능력을 키워주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맹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백성이란 일정한 생업이 있는 사람은 변치 않는 마음이 있지만, 일정한 생업이 없는 사람은
그로 인해 변치 않는 마음 또한 없어지는 법이다." 백성들에게 일정한 재산이 없다면 변치 않는
마음이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항심'이 없다는 말은 안정된 마음상태를 갖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안정된 마음상태를 갖지 못하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게 됩니다.
심지어 범죄까지도 말입니다. (본문중에서 p171)

이 부분은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여러가지 사회부작용에 의해서
다른 형태의 범죄도 발생하지만, 최대한 모두가 다 같이 잘살기 위한 방법을 강구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를 둘러싼 과제이다.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도의 움직임이고 부드러운 것은 도의 쓰임이다"라는 것
말입니다. 이것이 도가사상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자주쓰는 '사물이 극한에
도달하면 반드시 반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본문중에서 p242)

현대에는 주식시장에나 들어맞을 말처럼 느껴지지만,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심리학적인
측면에서도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결국은 인생이라는 것은 하나의 파형을 웨이브 형태로
계속해서 그려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만 사람에 따라서 그 파형의 크기가 다를뿐
오름이 있으면 내림이 있다는 것은 진리라고 말하고 싶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똑똑한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책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뜻을 얻었으면 말을 잊는다는 말은 책 속으로 빠져 들어갈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책에서 빠져 나올 줄 알아야 함을 보다 중요한 것으로 요구합니다.
그래야만 책이 담고 있는 정신과 요점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중에서 p327)

이책 안에서 참 마음에 드는 말중에 하나이다. 결국 하나의 지식을 습득하는데 있어 몰입해서
그것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는 한발 뒤로 물러나 객관적인 입장에서 다른
지식과 함께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하고, 또 선입견없이 전체적인 관점을 견지할 수 있는
그런 힘이 필요하다는 말로 해석된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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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간의 연구과제를
한 권의 책으로 읽는다는 것
다소 생소하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몰입'








몰입 Flow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 한울림 / 2004년

이책의 머리말에서 'Flow'의 정의를 보고서야 책의 주제를 알 수 있었다.
저자의 수십년간의 연구결과를 한 권의 책으로 모두 알수는 없겠지만 추상적일 수 있는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이 부분은 약간의 논란이 있을 것 같다.) 저술된 책이다.
몰입의 경지에서 인간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플로우라는 것은 사람들이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이 없을 정도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푹
빠져 있는 상태를 말한다. 곧 이때의 경험 자체가 매우 즐겁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어지간한
고생도 감내하면서 그 행위를 하게 되는 상태이다. (본문중에서 p29)


다소 생소한 플로우라는 단어에 대해서 저자는 몰입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 주변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수많은 즐거운 요소들. 모두가 우리들에게는 몰입꺼리(?)다.
때로는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이 어떤 일에 미쳐 열중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쉽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돈이 저렇게 많으면서 뭘 저렇게 열심히 할까?'
우리 주변에서의 몰입은 속된말로 '미치다'로 해석되는 것이 더 피부에 와닿을것 같다.

"어떻게 우리가 스스로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우리의 관심사인 이 질문에 대하여 오늘날 지식들은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불안과 공포를 없애고, 또한 사회적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거듭 말하지만 그 해결책은 우리의 의식을 통제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방향으로 내딛는 한 발짝의 작은 전진이 우리의 삶을 한층 더 즐겁고 의미 있으며
풍요롭게 만드는 데 큰 변화를 줄 수 있다.
구체적으로 그 방법을 찾아가기 전에 먼저 간단하게 우리의 의식이 어떻게 움직이고, 우리의
'경험'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그 말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를 알고 나면 우리의 개인적 자유를 성취하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본문중에서 p58)


개인적 자유의 성취.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유'의 결핍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한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 순간들이 남들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어 나의 자유가
침해받고 있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자유에 대한 침해는 결국 돈이라는
끈에 의해서 엮어져있는 그 무엇인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 말하는 몰입의 끈에 우리의 자유가 묶어져 있다면 개인적 자유의 성취는
쉽게 우리의 것이 되지 않을까?

최적 경험이란, 의식이 질서 있게 구성되고 또한 자아를 방어해야 하는 외적 위협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주의가 목표만을 위해서 자유롭게 사용될 때를 말하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상태를 바로 플로우(flow) 경험이라고 이름 붙였다. (본문중에서 p87)


플로우에 대한 추가적인 정의다. 앞에서 말한 몰입과 함께 '최적 경험'이라는 용어가
플로우의 대표용어가 된다. 결국은 몰입을 통해서 최적의 경험을 할 수 있고 이 최적의
경험이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순환구조로 몰입은 우리에게 좋은 경험을 가져다준다.

우리가 즐거운 활동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능력에 너무 의존하고 그 결과 다른 것들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궁극적인 통제, 즉 의식의 내용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를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플로우를 생산하는 즐거운 활동은 잠재적인 부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활동들이 우리 마음의 질서를 가져와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반면, 이들 자체가 정도
이상으로 중독이 되면 우리의 자아는 특정 활동에만 몰입하게 되고, 그 결과 삶의 다양성에
대처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본문중에서 p125)


몰입의 역기능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결국은 현대인들의 일중독과 같은 것도 이런 것에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몰입 차원에서의 역기능은 우리가 어떤 댓가없이 좋아서 하고있는
일에 자신의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수준으로 설명될 수 있다.
저자는 삶의 다양성에 대처하지 못한다는 젠틀한 표현을 쓰고 있지만, 사실 몰입의 역기능이
심해지면 일상생활이 곤란하게 될 수도 있다.

최적 경험을 유발하는 특정 가정 환경 유형의 특징을 다음 다섯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명료성이다.
두 번째는 중심성이다.
세 번째로는 선택성이다.
네 번째의 특징은 자녀가 부모의 보호 아래 충분히 편안함을 느껴 자기가 관심 있는 어떤
것이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부모의 신뢰성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도전성인데, 이는 자녀들에게 점차 복합적인 행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부모의 헌신을 말한다. (본문중에서 p170)


이래서 육아라는 것이 어려운가 보다. 아이에게 편안함을 느끼도록 하는 환경제공과
도전성을 위한 행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두 가지가 양립한다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위의 다섯 가지가 최적경험을 위한 가정 환경의 유형이라면 어느 부모인들 적극적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플로우라는 개념 자체가 EBS의 여파로 '다중지능'이라는 이론에
대해서 눈을 뜬 부모들에게 관심거리가 될지는 의문이다.

어떻게 하면 사랑을 항상 새롭게 유지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다른 활동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사랑의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복합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복합적인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자기 자신의 그리고 상대방의 잠재력을 개발해야 한다.
잠재력의 개발을 위해서는 상대방에게 주의를 집중해서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어떤 감정과 꿈을 지니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 자체가 끊임없는 하나의 과정이며, 평생을 통해 이루어야 하는 과제이다. (본문중에서 p195)


우리는 보통 자기계발의 과정에서 자신의 잠재력을 끄집어 내는 것을 중요한 전환점으로
꼽는다. 그런데 몰입의 과정에서도 두 사람의 관계에서 상대방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과정이 소개되고 있다. 우리주변에서 흔한 예는 마치 우리가 TV에서 보는 연예인을
캐스팅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나의 가족, 나의 친구들인 것이다.

공상은 유익한 점이 많다. 먼저, 공상 속에서나마 불쾌한 현실을 보상함으로써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벌받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서 좌절감이나 적개심을 어느 정도 해소시키는
것처럼- 감정의 질서를 수립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공상은 의식의 복합성을 높이는 일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예컨대 아이들이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상상을 통해서 당시 상황을 반복적으로 재현해
봄으로써 지금껏 문제 해결에 최선이라고 생각해 왔던 방법을 수정할 수도 있고, 다른 대안도
생각해 보며, 예상치 않은 결과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을 닦는다면 공상도 매우 즐거운 것이 될 수 있다. (본문중에서 p224)


누구나 이런생각들을 할 것이다. 하루에도 수십번. 어쩌면 이런 공상이라는 영역에서 나이가
들수록 멀어지는지도 모른다. 또는 유치한 어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차를 마시면서 거실을 계속해서 걷곤하면서 나만의 공상을 즐긴다.
때로는 이런 공상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또는 즐거운 공간에 나를
데려다 주기도 한다. 우리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을 우리의 공상 속에서는 가능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것인가. 마음껏 공상하자.

다른 모든 지식과 마찬가지로,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결정하고 난 후에 제일 먼저
거쳐야 할 단계는 그 분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배우는 일이다.
선택적으로 책을 읽고, 말하고 듣는 과정을 통해서 해당 분야의 '추세'를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첫 시작 단계부터 각자가 학습의 방향을 통제해 나가야하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본문중에서 p256)


우리가 잘 모르는 분야를 새로 시작할때 쓰는 방법이다. 우선은 우리의 롤모델을 확인해야 한다.
이분야의 최고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는 어떤 방법으로 최고가 되었는가?
그 방법에 대해서 공부하고 먼저 흉내내보자. 그런과정에서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만들어
나갈 수 있고 이런 방법이 가장 빠르게 정상에 다가가는 방법이다.

플로우를 제공하려면 가정에는 그 존재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외적인 이유들로만은 충분치 않다.
"다른 사람들도 다 결혼을 하고 사니까", "아이를 갖는 것이 당연하니까" 등의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러한 태도가 처음 가정을 이루는 데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가정생활을 즐겁게 해주지는 못한다. 부모와 자녀들이 심리 에너지를 공통적 과업에 집중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긍정적 목표들이 있어야 한다. (본문중에서 p328)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일들이 이런 수순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은가?
무엇인가 남들이 하는대로 살아오다보니 나이가 들어가고 있고 또 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게
되는 그런 반복적인 불행한 생활들. 그리고는 수십년이 흐른뒤 의자에 앉아서 차 한잔하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나도 꿈이 있었던거 같은데....'
슬픈이야기이다. 정말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하루에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좋다. 그 일을 생각하고 또 실행해보자.
언젠가는 그 일이 자신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이다.

자기 목적적 자아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어떤 목표를 추구하고 있든 그 목표를 선택한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는 바로 자기 목적적 자아를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기본적인 차이점 가운데 하나이다.
이 같은 사실은 서로 상반되는 듯이 보이는 두 가지 결과를 초래한다.
그 하나는 스스로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주지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목표에 더욱 충실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람의 행동은 믿을 수 있으며, 스스로 통제된다. 또 다른 하나는,
결국 자신의 결정이기 때문에 그 결정 사항을 지켜나가는 것이 더 이상 이치에 맞지 않을 때는
언제고 자신의 목표를 수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자기 목적적인 사람의
행동은 더욱 꾸준하기도 한 동시에 더욱 많은 융통성도 가질 수 있다. (본문중에서 p381)


자신이 원하는 목표이기에 더욱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고, 자신이 결정했기에 더욱 책임있는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남들이 다 결정해주고 자신은 받아먹기만 하면 겉으로는
편하겠지만, 그건 자신의 삶이 아닌 것이다.
왜 나의 인생을 그들이 결정하게 내버려두어야 하는가?
다시 생각해보자. 자신의 결정안에서 만들어진 노력이 플로우 곧 몰입을 만들어내고 그 몰입에서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되고, 그 가능성이 미래에는 자신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준다.
이책에서 말하는 자기 목적적 자아를 통해서 자신의 미래를 지배하자.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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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많은 힘을 쏟아야 했던 책
마음의 치유를 위한 과정은 어렵다고 느껴진 책
심리 치료라는 분야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준 책









마음의 치유 / 기 코르노 / 북폴리오 / 2006년

이책을 다읽고나서 아버님께 찾아갔다.
신기하게도 아버님의 책장에도 같은 책이 있었다.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왜 읽으셨는지 알 수 있었다.
막다른 골목안에서 우리는 무엇이든 잡기위해서 발버둥 칠수도 있지만 마음의 평안이
우선이라는 것......

환자가 기운을 회복하고 자신의 질병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려면, 그리고 질병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으려면, 자신의 질병이 단순히 질병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의식할 수 있는
'내면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크롱베즈는 휴식, 시각화, 언어적 표출 등의 방법을 통해 환자가 자신의 치유과정을 경험하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환자는 자기 나름대로의 길을 찾아냄으로써 외부의 보살핌에 덜 의존하게 된다.
(본문중에서 p44)


환자와 함께 한다는 것은 참 어렵다. 더군다나 가족중에 누군가가 투병을 하고 있다면
더욱 어렵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환자가 되었을때 더 자신의 상황을 표출하는 것 같다.
물론 표출하는 형태가 제각각이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상대의 더많은 관심과 보살핌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결국은 질병 자체로도 힘들지만 심리적인 공황상태가 더욱 문제가 되곤한다.

그녀는 또한 모든 증상이 '자아를 무시'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우리가 앓게 되는 대부분의 질병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차원에서 우리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다. 우리 몸은 고통을 통해 우리 자신에 대한 정보를 보내고,
그 정보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본문중에서 p77)


투병생활의 첫단계에서는 대부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현실을 부정하고,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게 된다.
현실을 인정할 수 없기에 감정의 기복도 심하게되고 또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지나고 체념의 기운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중증환자의
경우 삶에 대한 끈을 놓아버리게 되거나 자신을 학대하게 된다고 한다.
병자를 보살펴줄 수는 있지만, 말 그대로 대신 아파줄수는 없다.
결국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상황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해야만
마음의 치유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의 포스터 문구를 인용하면서 이 장을 끝맺고자 한다.
'당신은 누군가가 난민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
하지만 당신이 더 이상 난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책임이 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질병에 대해서 책임이 있지는 않다.
하지만 질병이 유발하는 고통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의식하고
해결하도록 도와준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를 돌보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질병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건강을 관리하는 데 이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분명 그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적 차원에서나 집단적 차원에서 똑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본문중에서 p97)


개인적인 차원이나 집단적인 차원이나 똑같이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하나의 개인도 자신의 질병에 대해서 그 질병이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어떠한 형태로든 치료를 위한 행동을 해야한다.
그것이 자아를 존중하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인 것이다.

이미 말했던 것처럼, 나는 유능하고 별 걱정거리가 없는데 결장염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여기서 심리상태의 중요성이 드러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은 그런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 범위를 넘어선다는 핑계로 식이요법, 운동요법, 심리치료나 명상 등의
의미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본문중에서 p122)


우리가 질병이라고 말하는 것은 대부분의 인식으로는 병균의 침투에 의해서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심리적인 또는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서 발생하는 질병이 절반이라고
한다. 1/3은 순수하게 병균 등에 의한 질병이고, 1/3은 병균과 심리적인 문제의 혼합적인 질병,
나머지 1/3은 오로지 심리적인 문제에 의해서 발생한 질병이라 한다.
(노먼 V.필, 적극적 사고방식 참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때론 심리적인 치료법으로 중증질병을 치료했다는 사례들을 접하곤 한다.
하지만 대부분 믿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위의 질병의 발병원인을 보면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살아가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듯 치료하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조안느는 고통을 완화시켜 주는 약물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육체라는 옷을 입고 살고 있으며, 육체의 최소한의 안락함을 보장받지
않고는 영혼을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최소한의 육체적 안락함과 주위 사람들로부터의
인간적 따뜻함을 보장받을 수 있을 때 환자는 비로소 마음을 열 수 있는 거라고 말했다.
(본문중에서 p180)


우리는 감기몸살만 앓아도 심리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는다.
모든 일이 귀찮아지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모든 소리가 짜증날 것이다. 위에서 말하는
최소한 안락함.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질병도 쉽게 치료할 수 있대요' 이런 말은 그저
좋은 말일 뿐이다. 육체와 정신의 안락함이 보장되어야만 그제서야 마음의 치료의 시작점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 다다르면 이제 마음의 치료에 가속도가
붙게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프로이드는 무의식 차원에 있는 모든 것은 반복되는 속성이 있다고 확신했다.
융 또한 우리가 의식적인 차원에서 거부한 모든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운명이나
사고의 형태로 우리 인생에 개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무의식을 의식 차원에서 받아들이면, 무의식은 그러한 능력을 잃게 된다.
예를 들어, 비록 당신이 강압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더라도 당신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지배에 대한 욕구나 복종에 대한 성향을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면, 당신과
어머니의 관계를 특징짓던 지배 시나리오가 당신의 인생에서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본문중에서 p228)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아동심리학이나 육아를 위한 서적에서 읽던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결국은 마음과 정신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자신만의 의지를 살려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물론 자라온 환경자체가 가장 큰 영향을 주겠지만, 극복의지가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때로는 어린시절부터 보아온 좋지않은 교육환경이 자신의 거부본능을
더욱 자극하게 만들었다면 반대로 정신적인 수양에 의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문장이 조금 어렵게 쓰여졌지만, 정리하자면 '난 커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와 같은 문장으로
함축할 수 있다.

이책 마음의 치유는 단순하게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는 면에서만 바라보기 보다는 심리치료라는
부분이 지친 현대인의 뇌리에서 새로운 부분으로 자리잡아야 할 필수적인 생활의 습관으로
인식되었으면 한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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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시절 이후로 생각해본적 없는
철학의 메시지
삶의 의미라는 거창한 의미로
다시 철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준 책








삶의 의미라는 커다란 물음 빅 퀘스천 / 줄리언 바지니 / 필로소픽 / 2011년

'삶의 의미' 와 어렵다. 앞에서 철학에 대한 흥미를 다시 불러준 책이라고 말했는데
사실 이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최근에 사람들이 책을 읽는 주요분야는
누가 뭐라고 해도 역시 '자기계발'과 '경제/경영'류가 아닐까 생각된다.

오래간만에 접하는 철학에 관련된 언어들이 내 두뇌의 촉각을 곤두서게 만들었고 최대한
집중하고 긴장하면서 읽어야만 했다. 하지만 다 읽고나니 나름대로의 인문학 안에서의
철학의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책에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 '거품을 빼고' 설명할 것이다.
즉 '인생의 의미'라는 신화적이고 신비로운 하나의 질문을, 인생의 다양한 의미를 다루는
전혀 신비롭지 않은 작은 질문들로 환원할 것이다.
이 방법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이하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서문중에서 p17)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최대한 단순하게 간결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가
이 책을 읽기전에 우선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답이 없겠구나'하는 예상을 하고 읽었다.
왜냐하면 이런 주제는 정답이 있다기 보다는 각자가 생각하는 원칙과 생각의 줄기가 나름의
사상을 만들어주는 주제이기에 그저 저자의 풀어가는 방식이 궁금했을 뿐이다.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인생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
인생의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이 목적이 창조주가 꿈꾸던 것인지, 스스로 부여한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인생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창조주에
의해 주어진 의미보다 열등하다고 볼 이유는 없다. (본문중에서 p30)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어떤 목적과 의미를 부여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목적과 의미가 정답을 이루는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인생이 아닐까.
왜? 바로 우리각자가 인생의 주인이니까.

최초의 목적이 영원한 목적이 되는 것도 아니고 최초에 목적이 없었다고 해서 영원히 목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목적은 획득될 수도, 없어질 수도, 변경될 수도 없다. 바로 이것이 삶의
기원이 사람의 목적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못하는 이유이며, 또한 생명이 어떤 목적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자연주의적 믿음이 인생에 목적이 있을 수 없다는 뜻 아닌 이유이다.
(본문중에서 p40)


저자가 삶의 의미에 대해서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큰 주제에서부터 하나하나의 부제를
뽑아내어 삶의 의미와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가고 있다.
정답은 없지만 확실한 자기주장은 있다.

미래가 과거를 정당화할 만큼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이 위험요소가 아니다.
그 미래가 영원히 오지 않을 위험도 있다. 인생의 목적을 미래에 두는 것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는,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존재인 우리가 미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일흔은 넘게 살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한 일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꼴이다. (본문중에서 p54)


우리가 인생에 대한 설계를 하고 계획을 세울때, 이런 가정을 많이 할 것이다.
30대에는 뭘하고, 40대에는 뭘해서..어쩌구 저쩌구... 이런 가정에 대한 일침이 아닐까?
물론 계획없이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미래에 사용할 나의 즐거움을 오늘 즐기겠다는
그런 논리에서의 경고도 아니다. 단순하게 미래의 목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해부하고 있다.
삶의 만족 자체를 미래의 무엇인가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이
기존에 자기계발을 위한 미래지향적 사고와 달라 신선하다.

철학은 종종 평범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물을 필요조차 없어보이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진보한다. 가장 화나는 질문 중 하나가 "...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죠?"이다.
철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단어의 의미를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철학자들이 토의에 등장하는 용어들을 명확히 하기위해 단어의 명확한
정의를 내려달라고 요구하면 짜증을 내기도 한다. (본문중에서 p86)


직업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이 서평을 쓰고 있는 필자의 경우도 이런 대화를 즐긴다.
처음에는 피곤하게 뭐하는 짓이냐하고 생각했지만, 꼭 철학적인 대화가 아니더라도 논리적인
사고의 정리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대화방법이다. 이런 대화가 한편으로는 철학자들의
대화방법이라고 하니 더욱 흥미가 간다.

행복이 가치 있는 삶의 목표라는 것,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무엇이라는 게 분명한 듯 보이지만,
다른 한편 행복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철학자들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행복을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자명함과 난해함이 섞이는 이유는 '행복'이란 말이 명확한'
의미나 지시 대상을 가진 단어가 아니라 일종의 모호한 지칭어이기 때문인듯하다.
(본문중에서 p124)


이렇듯 행복이라는 것이 모호한 지칭어 이어서 우리에게는 자신만의 행복을 해석하기 위한
철학적인 접근이 꼭 필요한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실체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또 그 의미를 삶속에서 즐길 수 있을까?
결국 모호한 의미의 추상적인 단어 또는 용어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명확한 해석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추구할 수 있는 실체로 다가오리라 믿는다.

행복의 가장 큰 장애물은 어쩌면 행복에 대한 현대의 신화 자체일 것이다.
행복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으면, 다른 사람들이 타당하게 바라는 것 이상을 가져도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우리는 인생에서 당연하게 여길 수 없는 것들을 거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위험에 처해 있다. 구식으로 들리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법을 잊었고, 갖지 못한 것을 원망할 줄만 알게 되었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더 많이
가져야만 만족할 수 있는 갈망과 다름없어졌다. 바로 그 갈망이 문제다. (본문중에서 p138)


이 이야기는 진부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현실이다. 모두가 행복에 대해서 같은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접근하기에 더욱 불행해 지는 것 같다. 좋은 집, 좋은 차를 가지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절대적인 기준을 내세우기에 바로 우리앞에 있는 행복을 인식하지 못하는 아닐까? 때로는 눈을 주변으로 돌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자신만의 행복을
발견해보자. 그러면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가장 큰 위험은 자기계발 문화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 대한 희망과 결핍감을 조장하는
방식에 있다. 이런 책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약속하며 그것을 쉽게 획득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인생은 단순히 X, Y, Z라는 일을 하는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인생이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우리는 성취와 유의미한 인생을 위한 완벽한 처방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본문중에서 p160)


현 세태에 대한 따끔한 충고다. 실제로 자기계발 서적을 읽고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다 할 수 있을것 같고, 뭐든 잘 될 것 같다. 물론 현실은 냉혹하기 그지없다.
최근 자기계발 서적들이 다 그렇게 보인다. '그저 믿기만 해라.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다.'
라는 방식의 책들. 실제로 이루어졌는가? 진심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차라리 자기계발 서적이 아니라 종교라 말하고 싶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인생에 대한 처방은 자기 스스로 내리는 것이 아닐까?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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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서적을 읽을때면
한없이 작아진다.
모르는게 너무나 많다.
하지만 끝까지 읽는다.
이제 시작이니까......







청춘의독서 / 유시민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유시민의 책은 기존에 경제학 관련된 책을 읽다가 말았던 기억이난다.
이번 책은 어머님께서 선물로 주신 책이다. 선물 받은지는 오래되었지만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읽다가 이제서야 꺼내들어보았다.

인문계열 서적을 읽을때마다 난독증이 일어날듯 하지만, 한 권씩 읽다보면 덜해지리라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읽는 행위 자체가 고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이제는 즐거움이 되었으니까......

권력을 상속받은 게 아니라 스스로 일구어낸 사람은 누구도 이런 걱정을 피할 수 없다.
선거로 대통령이나 총리를 뽑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차지 한다. 따라서 선거에 이기는 데 큰 공을 세운 참모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높은 직위를 얻어 정권에도 참여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선거전에 능한 사람이라고 해서
국정 운영이나 국가행정을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공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자리를 주면
국정이 꼬이고 국민의 지지를 잃기 쉽다. 그러나 자리를 주지 않으면 불만을 터뜨리고 권력자를
원망한다. '술을 마시면 자신의 공을 다투고, 술에 취해서는 함부로 큰 소리를 지르고 칼을 뽑아
들고 기둥을 치기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중요한 자리를 주면 국정은 망가지고
최고 권력자는 민심을 잃게 된다. (본문 p172)


난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다른이와의 대화에서 정치이야기가 나오면 잘하지 않는다.
잘 모르기도 하고, 사실 관심이 없어서 이기도 하다.
하지만 위의 글에서 말하는 내용은 공감한다. 공감한다는 말을 적어놓고도 내가 일에 대한
남과의 대화에서 요즘 꼭 하는 말이 있다.
"요즘은 일 잘하는 건 별로 소용없더라구요. 그냥 가격이 얼마냐가 중요한 시대인가봐요."
그럴까? 아직도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걸 보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것을 아직
인정하지 못하나보다. 불공평한 세상이기는 하지만 내가 극복할 의지가 있고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꼭 그럴것이다.

굶주림 앞에서 인간은 나약하고 비열한 짐승이 된다. 논산 훈련소에서 내 자신이 '머리 좋은 짐승'
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여러 차례 겪었다. 그 운명적인 선택은 야외훈련 때마다 찾아왔다.
멀리 야외 교장으로 가서 각개전투나 사격 훈련을 할 때는 훈련병끼리 돌아가며 점심 배식을 했다.
숙달되지 않은 훈련병이라 밥이 남거나 모자라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러니 줄을 설때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앞이냐 뒤냐? 밥주걱과 국자를 든 훈련병이 어떤 친구인지 잘아는 경우에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였다. 소심한 친구가 주걱을 잡으면 뒤가 유리하다.
밥이 모자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처음에는 밥을 조금씩 푸기 때문이다. 대책 없이 사람 좋은 친구가 주걱을 들었다면 무조건 앞이 유리하다. 뒤에 섰다가는 자칫 밥이 모자라 점심을 굶을 수도 있다. (본문 p188)


군대를 늦게 다녀오기는 했지만, 다녀온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보았을 것이다.
사회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작은 것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
식사시간에 깍두기 한 개를 더 받기 위한 고민에 입김나오는 잠자리에서 마음속 눈물을 삼키던.
나약하고 비열한 짐승.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은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지나고 생각하면 다 추억이 아니었던가.

정치는 위대한 사업이다.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적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한신과 유방이 빛을 좇는 불나방처럼 권력을 향한 본능에 이끌려 투쟁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인의를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만하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비록 성인의 반열에 오를 만한 덕성을 갖추지 못했다 할지라도, 때로 맹목적 욕망과 시기심에 휘둘렸다 할지라도, 그러한 마음과 능력을 발휘하여 결과적으로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었지 않은가. (본문 p181)


우리 모두가 성인이 될 수는 없다. 그렇기에 현실과 타협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역사속 또는 이야기속의 주인공들이 모두 남의일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마음을
갈고닦다보면 더욱 우리에게 가까운 이야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현실은 우리에게 냉혹할지언정 마음만은 성인의 고귀함을 닮았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불량 식품'을 판다. 불량 식품은 색깔과 냄새, 모양, 가격이 모두 매력적이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불량 식품을 먹으면서 자란다. 반면 필수영양분이 풍부한데도 맛을 몰라서, 또는 그게 몸에 좋은 것인지 몰라서 먹지 않고 지나간 식품도 있다. 책도 그런것 같다.
돌이켜 보면 읽지 말았더라면 더 좋았겠다 싶은 책을 적잖이 읽었다. 균형 잡힌 지성을 키우려면
꼭 읽어야 할 책인데도 잘못 생각하거나 몰라서 빠뜨린 것이 적지 않다.
찰스 로버트 다윈의 종의 기원도 그런 책 가운데 하나다. (본문 p201)


가슴에 들어오는 표현이다. 내가 자랐던 환경, 그리고 지금의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
수많은 불량 식품들이 있지만, 언제나 그것을 피해야만 한다고 소리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런 것들을 피하라고 소리치기 전에 좋은 것들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환경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서야 시작된 나의 새로운 독서가 인생을 환하게 밝혀줄 등불이
되어줄거라 믿기에 이제는 아주 먼 동네의 것들도 마다않고 버선발로 맞이하고 있다.

여기서 '레저'라는 용어는 나태나 무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생산적 노동은 가치가 없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게으르게 살아도 될 만큼 금전적 능력이 있다는 증거로서, 시간을 비생산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한계급론 p67) (본문 p229)


명품의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 할때, 누구나 살 수 없다는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에서 명품을
논하듯, 게으르게 살아도 되는 능력이라는 말이 조금은 서글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럽다는 말로 표현하겠지만, 단순하게 남들이 접하기 힘든 가치를 위한
것이라면, 난 무의미하다고 표현하겠다. 금전적인 능력에 대한 무용론이 아닌 남으로부터의
가치창출보다는 나로부터의 가치창출이 의미있다는 말이다.

아프리카 오지 원시 부족의 생활상을 관찰하는 인류학자처럼 사회제도의 진화 과정에 일절 개입하지 않고 지켜만 보다가 떠난 베블런이 나를 위로한다. 원래 그런 것이니 상처받지 마라고. 보수성은 유한계급만의 특수성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보편적 성향이라고. 그들은 다만 진보가 요구하는 인습적 사고와 행동 양식의 재조정을 귀찮아해서 그런 것뿐이라고. 생활환경의 변화가 더 진행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보면 사실이 그런 것 같다.
저학력 저소득 고령층 유권자들이 유한계급의 속물주의와 물신숭배
문화를 충실히 대변하는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준평화적 야만 문화'단계에 있는 모든 나라에서 볼 수 있는 보편적 현상이다. 우리나라 매우 심한 편이지만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혁신과 진보는 언제
어디서나 저속하고 품위 없다는 인습적 비난에 봉착한다는 베블런의 다음과 같은 분석에 위로를 받으면서 자문해본다. 나도 그처럼 팔짱을 끼고 냉담한 태도로 이 세상을 관찰만 하면서 살면 마음이 편해질까? (본문 p243)


마지막 문장이 참 표현하기 힘든 기분을 만들어준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판하고 비평하는 것은 즐기지만, 실제로 그 세상에 뛰어들기는 어려운 것이 바로 이 현실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저학력, 저소득, 고령층 유권자를 말하고 있지만, 이 부분은 이제 많이 변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바뀌지 않는 것은 왜일까?
혁신과 진보는 품위없다는 인습적 비난. 정치도 그렇지만, 기술 등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혁신과 진보에 대한 규제나 각종 사회적 장벽에 대한 요구들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것
같다.

언제나 정답은 없겠지만, 시소놀이도 재미있으려면 위아래를 반복해서 움직여야 하는것 아닐까?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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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광고나 영화예고편을
보는듯한 TV 프로그램
수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짧은 프로그램 중에 하나이지만
가장 돋보이는 프로그램







감성지식의 탄생 / 김진혁 / 마음산책 / 2010년

최근에는 EBS를 시청하는 비율이 많아졌다.
EBS이야기를 하면 어릴적 기억이 나는데, 나의 아버지는 TV가 틀어져있을때 내가 거실로
나온다 생각되면 채널을 돌려버리셨다. 바로 EBS로......
이미 거실로 나온 상태에서 EBS로 돌리셨다고 해서 다시 들어가기도 어색하고 앉아서
지루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노라면 졸음이 쏟아져 다시 들어가 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최근의 EBS 프로그램 들은 어릴적 지루하겠 보아왔던 채널이 아니다.
최근에 내가 즐겨보는 프로그램은 '다큐프라임', '세계테마기행'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하는
'지식채널e'라는 프로그램이다.
'지식채널e'를 처음 만났을때의 느낌은 한마디로 '신선함'이었다.

이런 구성은 기존 방송 프로그램의 구성-장소나 시간, 이야기나 인과관계에 따르는 방식-과 달리
사고의 흐름에 따랐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걸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본문중에서 p28)


이 프로그램은 드라마 등의 전개방식과는 다르게 인간의 사고흐름에 따른 논리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때로는 사회의 민감한 문제들을 다른 시각으로 조명해서 다시 깨닫게 해준다.
단지 몇 장의 사진과 몇 줄의 텍스트, 그리고 배경음악으로 시청자를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다.
기존에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신선함 따름이고, 인터넷에 동영상을
챙겨서 볼 정도이다.
판에 박은 드라마의 스토리 전개와는 다르게 정말 프로그램 기획을 잘하면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지식채널e'의 타이틀 첫 화면은 치지직거리는 상태로,
정규방송이 끝나고 정파가 된 모습이다.(본문중에서 p39)


이 앞부분에 나오는 치지직거리는 상태는 그런 사람이 많겠지만, 필자도 어릴적에 생각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난 어려서부터 사고가 제한적이었다보다.
'치지직 거리면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주목은 되겠지만 누군가 못하게 하겠지?'
이런 생각을 해버렸던 기억이 난다.
기존에 하지 않던 시도를 하게되면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우선은 주목을 받고 새로운
길을 걸으며 대중을 사로잡게 되나보다.

피디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은데, 피디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자기 생각을 얼마나 잘 '영상화'하느냐인 것 같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째는 말 그대로 영상화하는 능력이고,
두 번째는 생각이 얼마나 깊이 있는가 하는 문제다.
전자를 위해서는 많은 작품을 보고 분석하고, 또 경험을 통해서 영상으로 옮길 '소재'들을
확보해놓은 것이 좋다.
후자를 위해서는 자기 생각이 얼마나 좋은 생각인지, 즉 시청자에게 전달됐을 때 얼마나
울림이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첫번째가 부족하면 재미없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고,
두번째가 부족하면 의미없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다. (본문중에서 p73)


방송 프로그램의 양면성을 잘 표현한 말로 보인다.
영상화가 부족하면 프로그램이 재미없고, 생각이 부족하면 의미없는 프로그램이 된다.
애초에 두 가지를 만족한다는 것이 참 어려워 보이는데 '지식채널e'를 높게 평가하고 싶은 것은
그 시도에도 있지만, 단순한 구성요소(사진, 텍스트, 배경음악)만을 가지고 두 가지를
충족 시켰다는데 있다.

'지식채널e'의 제작방식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참으로 비효율적인 방법이지만 의심과 자료 조사라는 '노동'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다.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일수록 특히 더 의심해야 한다.
당연한 것일수록 왜 당연한지 따져 물어야 한다.
동시에 '누락된 사실'이 있지 않은지 자료 조사를 해야 한다.
내용과 관련된 부분을 전방위적으로 조사하면 누락되거나 맥락에 어긋나는 것들을 찾을 수 있다.
'지식채널e'제작의 8할이 창의력이라기보다는 '노동'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본문중에서 p174)


의심과 자료조사라는 노동. 필자를 이렇게 생각한다.
반복적인 노동요소는 어떤 확신이 있고, 방향이 정해졌다면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된다.
남들과 다른 시각의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방송에 대해서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흔히들 말하는 '찌라시' 언론처럼 원하는 방향에 따라서 매체를 만드는 것과는 다른 방향이다.
이 책의 저자는 '노동'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난 '열정'이라는 단어로 바꾸고 싶다.

흔히들 광고를 만들어가는 과정하면 끊없는 밤샘작업을 떠올리곤 한다.
멋진 광고보다도 항상 기억에 남고 여운을 남겨주는 '지식채널e'

'지식채널e'와 같은 정답이 없어보이는 매번 달라지는 주제를 가지고 나름의 시각에서
화려하지 않은 도구로 어떤 프로그램 보다도 짧은 시간에 돋보이는 작품을 만들어낸
EBS에게 박수를 보낸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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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방송에서 잘한일 중 하나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인문학
가깝게 느껴보자.







인문학콘서트 / 한국정책방송 / 이숲 / 2009년


아무래도 기술관련된 직종에서 일하다보니 모든 면에서 건조해지기 쉽다.
그리고 인문학이라고 하면 잘모를뿐 아니라 독서를 하면서도 자기계발이나 경제경영 관련분야 책을
주종으로 읽게되어 얄팍한 지식이 금방 드러나버리기 일쑤였다. 항상 아쉬웠던 부분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서 고른책이다.


기자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한 사람에게 벌어지면 '사태가 고조되어 있다'
라고 쓰고, 두 사람에게 벌어지면 '만연한다'라고 쓰는데, 세 사람째 벌어지면 아예 기사를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중요하더라도 관심에서 벗어나거나 일반화된 사안은 다루지 않는 것이 언론매체의 속성입니다.
인문학조차도 화젯거리가 되어야 기사화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인문학 열전'에서는 주제에 화제성이 없어 안된다는 평가를 전혀 개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서문중에서 p12)


서문내용에서 책의 방향과 의도를 밝히고 있다. 사실 누군가 찾아서 일기 전에는 아니면 방송을 보고
참 좋았다는 느낌이 들어 읽기 전에는 쉽게 찾아읽기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문학 대중화를 위한 여러 움직임이 있어 인문학 관련서적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있어 보이니 꼭 화제성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통합은 물리적으로 이질적인 것들을 그냥 한데 묶어놓은 것입니다.
융합은 하나 이상의 물질이 함께 녹아서 화학적으로 서로 합쳐지는 것을 말해요. 그런데 그날 그 자리에서
한두 분이 '거기서 그치면 통섭이 아니지. 거기서 뭔가 새로운 게 만들어져야지'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자식을 낳아 달라는 얘기입니까? 그럼 통섭은 생물학적이군요?'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럼 통합은 물리적이고, 융합은 화학적이고, 통섭은 그냥 거기 섞여 있는 상태로, 녹아 있는 상태로
멈춘게 아니라 거기서부터 뭔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게 만들어지는, 번식하는, 생물학적인 어떤
합침을 의미한다는 거지요. (본문중에서 p48)


통합, 융합, 통섭 언제나 용어의 정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주 쉽게 풀어져있어 좋다.
통합과 융합은 최근에 일반에도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된 것 같다. 통섭의 경우는 아직은 일반에 잘 보이지 않는
용어인데 인문학콘서트를 통해서 통섭이라는 용어와 친해진 것 같다.
이런 용어의 정의에서만 보더라도 인문학이 최근 기술집약적인 학문에 밀리는 느낌이지만 사실 그 깊이에
있어서는 어느 학문이 못하다고 말할 수 없는 모습을 만들어준다.
최근에는 기술적인 부분에 예술및 인문학의 모든 총체적인 학문을 결합해서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인기를 얻고 있다. 결국 인문학을 이해해야만 사람이 필요로하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석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기본기를 뭐라고 합니까? 수학능력 즉'수능'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수능시험이라는 걸 보잖아요. 그럼, 수학능력자들이 대학에 들어와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주 거칠게 학생들을 몰아세웁니다. 너희가 무슨 수학능력자냐, 수학장애우들이지.
분야가 조금만 달라져도 완전히 속수무책인 아이들이 장애우지, 무슨 능력자입니까? 미국에서는 이미
중고등학교에서 그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대학에서 전공을 자유롭게 옮겨 다닙니다. 제가 하버드에서
가르칠 때 전공을 다섯 번 바꾸는 녀석도 봤어요. 비슷한 학과가 아니라 문과, 이과, 예술학과를 옮겨
다니더라고요.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 아이들에게 이미 그런 소양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죠.
(본문중에서 p58)


최근에 교육계에 이슈가되는 내용이다. 사교육의 짐을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해결한다는 것.
결국은 그 해결방법의 핵심이 기본기에서 나오는데 그 기본기가 바로 공부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학문도 결국 한가지 학문을 배우기위한 과정과 그 원리를 깨닫고 나면 다른 학문을 접해도 같은 방법으로
쉽게 터득할 수 있다는 것 그것 아닐까?
그래서 인문학이라는 학문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미국의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화가인 폴 호건은 상상부터 하라고 말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세계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실재를 보면 어떻게 새로운 무엇을 찾을 수 있겠는가?
환상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마음의 눈을 계발하지 않는다면 육체의 눈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본문중에서 p88)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바를 이루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데 있어 그 목표를 정하는 것을
첫번째로 꼽는다. 목표를 정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대상이 필요한데 항상 중요시되는 것이 바로
그 목표를 끊임없이 상상하여 최종적인 결과물을 머리속에 그린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모든 기술들이 예전에는 우리의 상상속에서 나온것 아니겠는가


우선 자신을 안다는게 가장 중요한것 같습니다. 자꾸 남에게만 요구하지 않습니까?
미국의 존F케네디 대통령 연설에서도 국가가 너희에게 해줄 것을 묻지 말고, 너희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으라고 했지요. 오바마 대통령 취임 대에도 주권 이야기를 했어요. 주권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죠.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해서 권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남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남을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습니다. (본문중에서 p98)


너무나 당연하지만 실천은 어려운 그런 내용이다. 자기계발의 기본에 공통적으로 다루는 내용중 하나인
'네 자신을 알라!'라는 부분이다. 우선 자신의 현재를 똑바로 인식하고 이해해야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남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진리이다. 나로부터 출발한 내면의 나의 이해가, 외부의 사물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이다.


자녀에게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오라고 하기보다는, 책을 많이 읽어서 교양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공부시키기보다는 자녀가 교양인이 되게하고, 직업은 뭐가 됐든 간에 3만 가지 중에서 하나를 택해서 자녀가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도록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중에서 p100)


좋은 성적은 언제든지 받을 수 있다.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때에 열심히 공부해서 이루면 되니까.
하지만 책읽는 습관처럼 어려서부터의 환경과 시간이 필요한 것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주변에 아주 많다. 도서관에서부터 수많은 서점, 그리고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책을 읽을 수 있으니 그 환경은 어느때보다도 좋아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정보 속에서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려면
독서하는 습관을 통해서 교양인으로 자라나는 기반에서 그 힘을 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교육은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끄집어내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집어넣는다는 것은 영어니 수학이니 국어니 하는 것을 아이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죠.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는 교과목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 버렸잖아요.
그러나 하워드 가드너에 의하면 그런 지식은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학교라는 집중적인 과정에서는 학생의 내면에 숨어 있는 그 학생만의 소질, 적성, 능력을 끄집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사람마다 내적인 텃받의 질이 각기 다르다는 거예요.
(본문중에서 p116)


신선한 표현이다. 아이에게서 교육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숨어있는 소질, 적성, 능력을 끄집어 낸다.
그렇다. 사실 우리 나이에 어릴적에 자신이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고민하면서 자라온 어린이가 얼마나 될까?
아무리 시스템이 잘되어있고, 좋은 시설이 있어도 어린나이에는 그런것들을 스스로 알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교육을 통해 그런 자기의 발견을 도와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역할 아닐까?


인물이 그다지 출중하지 못한 애인을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믿는 그 학생이 자기만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데 주위의 모든 학생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봐라, 예쁘지? 예쁘다고 안 하면 너 큰일 나'이렇게
강요한다면 문제가 아닐까요? 바로 이러한 교조주의적 태도, 원리주의, 근본주의적 자세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책에 나오는 내용을 문자 그대로 신봉하고 그것을 현실세계에서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태도가 분쟁을
낳고 테러로 이어지는 것 아닙니까? (본문중에서 p137)


위의 이야기는 비단 종교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의 모든 문제에 다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갈등을 겪고 또 그 안에서 분쟁이 일어난다.
분쟁의 가운데에는 결국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데에서 발생하는 사고적인 폭력이 있다.
우선은 내 생각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와 다른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해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여유가 없나보다.


처음에는 책의 두께 때문에 읽기 어려워 보였던 책이지만, 실제 방송에 출연하였던 내용을 요약한 것이라
대화를 듣는 느낌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고, 인문학을 그저 어렵게만 생각하다가 부담없이 대화형식으로
읽다보니 어느새 끝까지 읽게 되었다. 수많은 세월의 내공이 느껴지는 대화들을 간접경험으로 느끼다보니
인문학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인문학 중심의 북 포트폴리오는 구성해 봐야겠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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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책읽기 두번째 / 안상헌


최근에 책을 많이 읽다보니 책읽는 방법이랄까 이런 부분에 관심이 많이 간다.
생산적 책읽기라는 제목에 약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책을 생산적으로 읽는다......그냥 빨리 읽는건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정말 놀라운 공통점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아주 긍정적이라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나도 아주 반갑게 대한다.
세상을 밝게 보고 사람도 긍정적으로 대한다. 마치 모든 것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 땅의 지식인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왜?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필요하고 유리한 지식과 정보만을 취사선택했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전에도 이야기한 적 있지만 언제나 책을 읽을때는 감탄하고 또 감탄한다.
이런 세상도 있고 이런 방법도 있구나.
이 문장 정말 멋지구나.....
뭐 하지만 항상 거기서 끝!....책장을 덮고나면 다시 다른 책에 이끌려 있다보니 아마도 이 서평을 쓰게 된것도
그런 불만족에 대한 반감이리라 생각된다.

이 책에서 필자가 말하고 있는 부분의 핵심은 아마도 책을 잘 고르고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읽고난 뒤에 이 책에서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취하여 자신의 생활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예전에는 일본과 비교하면 항상 지하철에서 한국사람들 책을 별로 읽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최근에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책도 많이 보고 스마트폰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읽고 있는 모습도 눈에 띄게 늘었다.
넘쳐나는 미디어 안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잘 취사선택해서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그런 하루이기를 바란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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