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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아이 '샘'과

심리학자 할아버지의 

두번째 이야기





샘이 가르쳐준 것들 / 문학동네 / 대니얼 고틀립


   남과 다른 뭔가 굴곡있는 삶을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남들과 다른 삶이 주어지나보다. 이 책을 쓴

저자도 그것에서는 예외가 아니어서 불행한 사고를 당한 후에 삶은 높은 파도를 넘나드는 것같은

그런 삶을 살아왔다. 그 삶안에서 작은 즐거움을 선사해 준것이 바로 그의 손자 '샘'이었는데

그 손자의 삶도 평탄하지 않았으니 이것 또한 예외가 아닌 그것인지는 모르겠다.


   전신마비를 일으킨 교통사고, 우울증 뒤에 따라온 이혼, 그리고 계속된 가족들의 죽음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과의 삶 안에서 자폐증상을 앓고있는 손자와의 일상에서 느낀점을 정리한 책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 것인지 물음으로 이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당신이라면?



하지만 자신에게 무리한 기대를 걸기 전에 나는 누구이고,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찬찬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신학, 철학, 심리학에서 말하는 거창한 이론을 떠나서, 용서란 결국 

상처를 다스리는 것이다. 용서란 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부당함을 견뎌낼 길을 찾으려는 노력인

것이다. (본문중에서 p26)


   살다보면 자신의 의도와는 다르게 한가한(?) 시간이 주어지곤 한다. 저자또한 다르지 않아

불의의 교통사고를 통해 전신마비가 오면서 말하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과 마주한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 일로 인해 삶의 모든 것들이 달라지고 변화를 겪는다면 그것은 그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천천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물론 천천히 살펴볼 수 있는 마음의 평정심을 찾고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부당함에 대한 극복 단계에 다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경험이란 이런 것이다. 함께하고픈 마음, 온전히 이해받고픈 마음, 도움이 필요할 때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픈 마음...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이러한 염원을 품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에게 결코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다. 우리가 가진 저마다의 고유성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 가장 깊은 부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우리를 외롭게 하는 그 

고유성이 한편으로는 우리의 개성을 만들고, 본연의 '나'가 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는 걸 

말이다. (본문중에서 p50)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개개인의 그 고유성 때문에 자신을 표출하려고 하거나 경쟁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는 한다. 인간은 결국 홀로 이 세상에 와서 혼자 돌아간다는 말처럼

외로움이라는 것은 우리들 자신 안에 내재된 가장 기본적인 성향인지도 모른다. 

본연의 '나'를 찾아가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해서 차분하게 성찰하는 시간을 거쳐야 하기에 외로움

이라는 시간의 터널을 지나와 찾을 수 있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다. 



예기치 못한 일을 경험하고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샘에게는 자기 자신 안에 회복력이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자신에게 가르침으르 줄 수 있는 것은 부모가 아니라 오직 환경뿐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엄마와 아빠가 샘에게 주어야 하는 것은 스스로 시련을 견뎌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것은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이 아이에게 주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모가 

이러한 믿음을 주지 못하면 아이는 믿음 대신 부모의 불안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본문중에서 p119)


   결국 병을 극복해야 하는 것은 환자 자신인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샘의 경우도 도움이

필요한 환자 중에 하나였고, 아빠와 엄마의 도움을 통해서 성장한다는 내용이 일반적이겠지만

전신마비를 겪은 할아버지를 통해서 서로를 치유해 나간다는데에서 더욱 의미를 두고싶다.

하나하나의 과정이 저자에게는 쉬운일이 아니었겠지만 손자에 대한 내리사랑이라는게 이런

상황에서는 더큰 힘을 발휘한것 같다.



절제하는 육아에 대해 명상 전문가들이 쓴 글이 있다. 절제하는 육아란 특정 상황에서 아이들

에게로 향하는 감정을 절제해 충동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태도를 말한다. 아이들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면 충동적인 행동 대신 사려 깊고 분별력 있게 대처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라. 이것은 육아에 대한 아주 훌륭한 접근법이다. (본문중에서 p226)


   아이를 키우다보면 충동적이라는 것이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나게 마련인데 일반적으로는

무엇이든 해주고싶고 잘해주는 모습을 떠올릴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반대의 경우도 많다. 

저자가 말하는 절제하는 육아라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정말 경험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을

공감한다. 어른은 아이의 거울이라는 말이 괜한말이 아니라는 것을 매일 느끼는 필자에게는

지키기는 어렵지만 마음에 새겨야 할 한마디로 생각된다.



어려운 환경 안에서도 행복이라는 것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을

자신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대니얼 고틀립에게

박수를 보낸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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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이 먹고

사랑하고

살아가기





내가 엄마의 부엌에서 배운 것들 / 맷 매컬레스터 / 문학동네


  표지의 사진이 정겨운 엄마와의 추억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종군기자와 부엌. 뭔가 매칭이 

안된다. 바로 이 책의 무대가 되는 곳은 종군기자가 있는 전쟁터이기보다는 전쟁같은 삶을 

살아간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요리라는 주제를 통해서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행복으로 복원해 

나가는 저자의 노력으로 대변될 수 있다.


어머니는 누나와 제게 세상을 뜰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머니를 잃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매력적이고 아름답고 우아하고 고결하고 친절하고 

따뜻하고 온화한 어머니를 되찾았으니까요. 하지만 어머니는 떠났고 제가 할수 있는 있은

어머니의 숨결을 곁에서 느끼며 '품위 있다'는 단어의 마지막 정의들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본문중에서 p32)


   누구에게나 겪게되는 일중에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슬픈일이라 상상속에 담아보는 것 조차도 그저 슬프지만 때로는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간접경험을 하며 그런 순간들을 생각해보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그저 피상적인 상상속의 무엇에 불과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엄마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 적도 나한텐 엄마는 실제로 바다와 하늘에 있어."

"그렇구나. 잘됐네." 누나가 말했다. "그런 식으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하늘로 바다로 엄마를 찾아갈 수도 있고, 말도 걸 수 있을 것 같아. 이젠 내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 하지만 며칠 못 가, 나는 나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곁 어디에도 엄마는 없었다. 엄마는 완전히 떠났다. (본문중에서 p58)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중에 가장 큰 것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유품을 통해서 또는 사진을 통해서 추억을 되살려 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그저 흩어진 기억을 다시금 짜내어 맞춰보는 과정에 불과할 것이다. 아마도 저자가 말한 

것처럼 언제고 만날 수 있다는 느낌으로 생각을 떠올려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원하는 기억을 원하는 때에 되살리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육신이 이 세상을 

떠난 것과는 별개로 정신은 남아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제 엄마는 부엌 식탁 근처에 늘 놔두는, 검정색 손잡이가 달린 작은 종을 들고 밖으로

나가 집 뒤 야트막한 억덕으로 올라간다. 대서양 바람을 닳고 닳은 산사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바로 그 언덕이다. 엄마가 종을 울린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종소리는 언덕과

들판을 넘어 찾아온다. 우리집 식탁에 뭔가 맛난 게 준비되어 있다는 걸 감지한 누나와

나는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간다. (본문중에서 p126)


   너무나 정겨운 모습이고 저자처럼 필자또한 그런 어린시절을 보냈다. 해질녘까지 밖에서

놀다보면 어느순간 어머니의 목소리가 하늘에 울려퍼진다. "밥 먹어라~~~!" 아마도 하루종일

놀면서 이 소리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이 책 전반에 펼쳐지는 엄마와 저자와의 추억들은

이런 정겨운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을 엄마의 부엌을 통해서 그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나라와

그 문화는 다르지만 우리네 가족애와 다를바없는 정겨운 모습에 독자들에게 향수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그 무엇인가를 뭉클하게 전달하는지도 모른다.



기억을 되살리고 불러내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과거로부터 좋은 엄마를 기억

해내고 불러내기로 했었다. 내 기억 속에 어둡게 자리잡고 있는 끔찍한 엄마 옆에 엄마다운

 엄마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부엌에서의 '재회'에 필요한 조건들을 갖추려 

나름대로 온갖 궁리를 해가며 애썼다. 우선, 요리가 그랬다. (본문중에서 p175)


   이 책의 제목에서부터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부분은 종군기자와 부엌이라는 공간의 부조화가

그저 필자만의 선입견이라 치부하기는 어려웠던 만큼 저자의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이 그만큼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불행한 말년을 보낸 엄마에 대한 끔찍한 기억들을 지우고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로 새롭게 채우기 위해서는 부엌이라는 공간만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한 기억을 되살리기에 엄마의 요리를 통해서 오감을 이용한 방법이 이 책 전반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매개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 시작과 끝 사이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관계가 있는데, 그 관계의 끈이 바로 우리의 기억을 채워주는 자양분이 되고 때로는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 관계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끊을수 없는 고리이다. 

이 책의 마무리 단계에서 다시금 생각해본다. 저자가 엄마와의 행복한 순간은 떠올리기 위한

장소로 부엌을 선택했듯 나의 가족들과 행복한 순간을 채워준 공간은 어디였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디가 될까?하고......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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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만 하다 놓쳐버리는

인생의 소중한 것들

김이율 작가의 신작




오늘, 또 사랑을 미뤘다 / 김이율 / 아템포


잔잔한 삶 속의 감동이라는 것은 인위적으로 주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김이율 작가의 삶 속에서 잔잔하게 자신의 느낌을 풀어나가는 화법이 그저 그만의

감정이 아닌 독자의 호흡을 감동이라는 언어로 엮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술 마시고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지갑을 열었습니다. 욕심나는 차가 있으면 앞뒤 잴 것도 없이

사고야 말았습니다. 그런데 왜 아무런 비용도 들지 않는 그 흔하디흔한 말 한마디 하지 못했을

까요? 왜 "사랑한다"고 건네지 못한 걸까요.

   아껴도 너무 아꼈습니다.

   숨겨도 너무 숨겼습니다.

   그 흔한 말. 사랑한다는 그 말.     (본문중에서 p13)


흔한 메시지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차라리 이런 메시지를 통해서

라도 사랑한다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만큼의 메시지를 담고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을

통해서 김이율 작가가 전하고자하는 바가 아니었을까요?



   누구나 다 기적 같은 행운을 꿈꿉니다. 인생역전을 바랍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누리고 있는 건 아닐는지요. 아침에 눈부신 햇살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 아이의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

이러한 것들이 행운이며 기적이 아닐까요? (본문중에서 p44)


인생이라는 것이 그냥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단 하루라도 인지했던 적이 있을까요?

그처럼 당연하게 여겨왔던 산소의 소중함과 물의 소중함 같은 것들이 더욱 진한 행복과 감동으로

느껴질 수 있는 하루하루가 바로 우리의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하루하루의 행복

을 누군가에게도 전할 수 있고 하루하루를 감사의 나날로 보낼 수 있다면 이기지못할 어려움이

있을까요?



   똑같이 아플 수는 없지만 그 아픈 마음을 나누는 게 자신의 몫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마음을

알아준다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의 첫걸음이었습니다. (p107)


누구나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은 다르고 그에따른 경험도 다릅니다. 하지만 그 경험이 다르다고해서

그 어려움을 공유하고 느낄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의 등을 두드려주고 아픔을 들어만 줄 수

있다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힘이되고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수많은 방송 프로그램

이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서 많이 느꼈을 것입니다. 



   무함마드 이후의 가장 위대한 무슬림이라고 일컬어져 온 이슬람 신학자 알 가잘리는 '행복의

연금술'이란 책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매일 아침 자신의 영혼에게 말해야 합니다. 신이 24시간의 보물을 주셨다.

그 어떤 시간도 잃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그 시간을 잃어버린 걸 후회하는 것만큼 참기 힘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본문중에서 p151)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살아간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겠지만 주어진 시간을 자신에게 의미있게 살아

간다는 것도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가장 의미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꼭 일분일초를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갈 것은 아니겠지만 그 의미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이 지구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때론 눈물에 이유가 없습니다. 서른이 지나고 마흔이 되면 그리고 마흔이 훌쩍 넘으면 그냥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논리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그럴 때도 있는 

것입니다. (본문중에서 p212)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나온다는 것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모든 일들이 다 이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모든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없듯 때로는 자신의 삶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채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세상에 순응

하며 삶이라는 무게를 받아들이고 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우리이기를 생각해봅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어려운 주제 안에서 그저 잔잔하게 흘러가는 감동을 놓치지 않고 글로 옮겨

본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느낍니다. 우리가 수없이 지나쳐온 시간

들이 바로 이 책 안에 녹아들어 있는것처럼 우리 삶도 그렇게 부지불식간에 흘러가 버리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김이율 작가의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그 의미를 되살려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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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시안, 베이징, 중국 역사의

세 꼭짓점을 따라 달리는

4,800여 킬로미터의 여정




중국 만리장정 / 홍은택 / 문학동네


 보통은 이런 자전거 여행이라고 하면 어느정도는 일반인들도 가능할만한 거리에서 시작되는게 

아닌가 생각하는데 이 중국여행기는 우선 그 여정이 자전거로 무려 4,800킬로미터다. 우리가 

인터넷을 타고 농담처럼 말하는 대륙의 그것처럼 규모 자체가 어마어마하다. 그만큼 저자에게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볼거리가 많은 곳이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그곳은 그렇게 다녀야만

하는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필자가 가보지 못한땅에서 저자는 어떤 생각을 하며 달리고 있었을지

파헤쳐본다.



 길도 그렇게 건너는 것이다. 푸른 신호등이 켜졌다고 해서 무작정 건너는 게 아니라 주위를 

살펴봐야 한다. 주동자가 먼저 길을 건너는 시늉을 하며 신경전을 벌여본다. 간을 본다는 

표현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동차가 속도를 늦추는 기미를 보이면 발걸음을 

천천히 떼면서 보행자들을 견인한다. (본문중에서 p34)


  여행의 즐거움이라면 멋진 풍경을 감상하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도 있겠지만, 낯선 곳에서

그곳만의 문화를 그들과 함께 체험한다는데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해가 가지않는 일이겠지만

그들에게는 생활인것 그것이 바로 그들만의 문화인 것이다. 단순하게 파란불, 빨간불의 규칙이지만

그 안에 문화를 담아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우리네 문화는 어떠한지 생각해보자.



 마오쩌둥 부적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같은 현상이다. 영웅들은 죽어서 신이된다. 신은 인간의

평가에서 자유롭다. 쑨원을 신으로 받드는 데는 그의 삼민주의와 같은 사상에 감화된 탓도 있겠

지만 그보다는 영웅을 신격화하는 중국의 전통적인 정서와 잇닿아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웅을 기다리는 마음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본문중에서 p109)


  중국하면 뭔가 폐쇄적이고 어두운 느낌이 들지만 우리보다 오래된 역사안에서 전통적인 부분을

마치 신격화하면서 지켜나가는 것을 보면 그것이 종교보다도 관습적인 범위안의 그들만의 언어처럼

굳어져버린 무엇이라는 생각이다. 상상할 수 없는 수많은 인구들 안에서 그들이 뭔가 잘 통제되어

하나로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영웅을 받드는 사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차이나타운과 코리아타운의 흔한 비유처럼 함께 모여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런 

힘이라고 생각한다.



 성벽 안쪽의 길을 타고 동문에 도착하자 잘생긴 젊은 남자직원이 검표하고 있었다. 중국 여행의

팁인데 중국은 잘생긴 남자들이 친절하다. 그는 관광안내소로 나를 인계했고 안내소에서는 뒤편

휴게실에 자전거를 들여놓았다. 정확히 내가 그리던 '아름다운' 광경이다. 따뜻한 찻물을 

담아주고 길도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중국에서는 인구가 많기 때문에 원칙을 지키는 사람도, 

융통성 있는 사람도 모두 있다. (본문중에서 p228)


  잘생긴 남자들이 친절하다는 대목에서 필자는 킥킥대며 웃었다. 그냥 웃기다. 필자의 경우는

해외에 나갈 기회가 생기면 비교적 외모가 수려한 여성에서 길을 묻곤한다. 물론 친절하다.

하지만 반대로 남성들에게 길을 묻다보면 불쾌한 느낌을 받기 쉬운데 저자의 의견보다 필자의

경우는 이성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던 기억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의 엄청난

여정에서는 잘생긴 젊은 남자가 효과적(?) 이었나 보다. 



 이렇게 조회를하고 군무를 추다보면 개인들의 합이 전체가 아니라 전체의 부분이 개인이라는

느낌이 강해질 것 같다. 줄이 틀리거나 동작이 엇나가지 않도록 서로를 의식한다. 모두 집중해서

군중이 일사불란한 전체로 바뀔 때 아름다운 일체감을 느낀다. 서구인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중국의 한 측면일 것 같다. 전체라는 것은 선험적으로 주어진 것이고 자신은 선택 이전에 어딘가

에 이미 속해 있다는 느낌. 그러니 전체를, 전체의 대표를 내 손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의식이 

생겨나기 어렵다. (본문중에서 p237)


  예전에 중국이라하면 공산국가, 사회주의라는 용어에 의해서 아무래도 경직된 이미지가 많이

떠올랐지만 최근에 와서는 그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농담처럼 말하는 

중국에 인구가 너무 많아서 개인의 개성이 표출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말들이 아마도 저자가

말하는 일체감이라는 용어로 표현되고 있는 것 같다. 전체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이 어찌 생각하면 조금 슬프다.


 모두에게 묻는다. 40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여행할 용기를 낼 수 있느냐고.

누구도 쉽지않은 일을 멀리 타국에서 실행에 옮긴 저자에게 우선 박수를 보낸다. 더군다나

적지 않은(?) 나이에. 단순하게 자전거 페달을 많이 밟았기에 보내는 박수라기 보다는

생생하게 전달되어 오는 저자의 여정이 중국이라는 기나긴 역사안에 더해지는 느낌으로 

다가오니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필자도 동네 한바퀴라도 자전거로 돌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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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마지막인가
2천 페이지를 넘는 대작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지루함은 없다








1Q84 Book3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동네 / 2010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와도 말하지 않고, 좁은 곳에 혼자 틀어박혀 있는 건 실제로
해보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야. 아무리 터프한 인간이라도 얼마 못 가서 신음을 흘리지.
특히 누군가에게 쫓기는 그런 경우에는." (본문중에서 p54)


우리들 모두 이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이버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자신만의 공간에 자신을
가두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1Q84의 세계에서의 아오마메에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누군지 아니까 괜찮아요." 후카에리는 말했다.
"전화를 건 게 나인 줄 미리 안다는 얘기?" "다른 전화는 안 받아요."
하긴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덴고는 생각했다. 그 역시 고마쓰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는
어쩐지 그의 전화라는걸 안다. 전화벨이 성급하고 신경질적으로 울리는 것이다.
(분문중에서 p131)


전화벨은 원래 같은 크기로 울리는거 아닌가? 하지만 왠지 공감이 가는건 왜일까?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면서도 왠지 세게 치면 글자가 진하고 크게 써질 것만 같다.
기술이 좀 더 진화하면 그런 것들이 가능해 지겠지만, 우리의 감성이 기계에 반영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무섭다.


"그리고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혹시나 해서 다시 말씀드리지요.
요청하신 토픽에 대해 입수할 수 있는 정보는 모두 입수했습니다. 우시카와 씨가 그 내용에
불만이 있다 해도 우리는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기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기
때문입니다. 보수는 노동에 대한 것이지,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본문중에서 p165)


아 정말 깔끔한 말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마음이다.
언제나 고객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지 하는게 직장인들의 마음아닐까?
보수는 노동의 몫이고 결과에 대한 것은 아니라는 말. 언젠가는 꼭 써먹어 보고 싶다.
뭐 핵심은 당신의 요청대로 처리했기 때문에 결과는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지만 가장 판타지하게
느껴지는걸 보면 현실은 역시 거리가 먼가보다.


그리고 남이 하는 말에 - 그것이 어떤 말이건 -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다. 거기에서 뭔가를 얻으려고 항상 유의했다. 그 습관은 이윽고 그에게 유익한 도구가
되었다. 그는 그 도구를 사용하여 수많은 귀중한 사실을 발견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머리로 뭔가 생각한다는 걸 아예 하지 못한다. - 그것이
그가 발견한 '귀중한 사실' 중 하나였다. 그리고 생각을 하지 못하는 인간일수록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본문중에서 p229)


너무 공감이 가서 할 말이 없을 지경이다. 정말 우리는 하루에 얼마나 자신만의 생각을 하는가?
생각을 하는 것이 정말 내 생각일까? 가장 공감하는 부분은 생각을 할줄 모르는 인간일수록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에는 나이가 들면 그렇게 변하는 것인줄 알았는데
나이와는 관계 없다는게 최근의 생각이다. 내 자신도 그런것은 아닌지 가슴에 손을 얹고 '
생각해본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진리로 여겨지는 것들이 대부분의 경우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키워나갔다. 또한 그는 배웠다. 주관과 객관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명료하게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만일 그 경계선이 애초에 명료하지 않다면 의도적으로 그것을
이동시키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작업이 아니라는 것을. (본문중에서 p305)


조금은 어렵게 쓰여진 문장이지만, 우리의 삶 자체가 이렇게 주관과 객관 사이에서 적절하게
타협하는 순간들로 메워져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이가 들면서 어떤 것에 대한 정의는 없다고
말하곤 한다. 정의는 없고 오로지 의도만 있다고...... 사실 슬픈이야기 이지만 살아가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그렇게 이해할 수 밖에 없다.


고마쓰는 코 양옆에 주름을 잡은 채 오래도록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 기묘한 세계로군. 어디까지 가설이고 어디서부터 현실인지, 그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져. 이봐 덴고, 자네는 소설가로서 현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겠나?"
"바늘로 찌르면 붉은 피가 나는 곳이 현실세계예요." 덴고는 대답했다. (본문중에서 p450)


어지러운 현실에 대한 심플한 해답. 우문현답인가?
답으로는 명쾌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혼돈 그 자체 아닐까?
그래서 그 혼돈의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역시 자기 자신을 붙잡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의 중심에 내가 있어야만 이 혼돈의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글을 읽고 자신의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보는 이는 없기를.....


"사람 하나가 죽는다는 건 어떤 사연이 있건 큰일이야. 이 세계에 구멍 하나가 뻐끔 뚫리는
거니까. 거기에 대해 우리는 올바르게 경의를 표해야 해. 그러지 않으면 구멍은 제대로
메워지지 않아." 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구멍을 그냥 놔둘 수는 없거든." 아다치 구미는 말했다.
"그 구멍으로 누군가 빠져버릴지도 모르니까." (본문중에서 p594)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면 뭔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는 다른 차원의 세상에 자유롭게
이동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 이동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껴가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도 그 중에 한 사람이지만 1Q84의 끝자락에 서서 그의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는 느낌이지만, 아주 길었던 장편에서 지루한 느낌이 전혀없이
읽어진 세 권의 책을 보면서 다시금 그의 창작력에 경의를 표한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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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시절 나의 상상력을 대신 표현해 준 작가
그와의 재회
나의 1Q84년을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의 초대장
다시금 나의 상상속 세상과 그의 세상이 교차한다









1Q84 Book2 /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동네 / 2009년

얼마전 3권까지 다 읽었다. 무려 200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이지만, 짧게만 느껴진걸 보면
역시 하루키다. 그동안 나온 신작들을 건너뛰고 오래간만에 읽어서 그런지 세월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겨워 질수도 있겠지만 역시 하루키 스타일로 쓰여진 소설이다.

때로는 판타지 같은 감성으로 쓰여진 부분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하루키의 소설을 표현하자면
'대리만족'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이유는 내가 상상속에서 꿈꾸는 것들을 그는 소설로
재연시켜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도 거대한 스토리와 함께 그만의 섬세한 표현들이
가득차있다. 하루키 팬이 아니라도 기대를 가지고 읽어봐도 좋을 듯.

하지만 어찌 됐건 그런 내적인 변화는 '공기 번데기' 리라이팅 작업 덕분에 생겨난 것 같다.
후카에리의 이야기를 자신의 문장으로 고쳐 쓰다보니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야기로 자신의
작품을 쓰고 싶다는 강한 마음이 덴고 안에 생겨났다. 의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싹텄다.
그 새로운 의욕 안에는 아오마메를 원하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본문 p112)


우리가 책을 쓰고 싶다는 것, 글을 쓰고 싶다는 것 자체가 모두 그런 것 아닐까?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고 싶다는 것이라는...
그런 것들이 촉발제가 되어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나나 보다.

과거를 바꿔 써봤자 분명 그리 큰 의미가 있을 리 없다. 고 덴고는 실감한다.
연상의 걸프렌드가 지적한 대로다. 그녀가 옳다. 과거를 아무리 열심히, 면밀하게 다시
바꿔 쓴다 해도 현재 나 자신이 처한 상황의 큰 줄거리가 변하는 일은 없다.
시간이라는 건 인위적인 변경은 모조리 취소시켜버릴 만큼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그것은 이미 가해진 수정에 다시금 새로운 수정을 덧칠하여 흐름을 원래대로 고쳐갈 게 틀림없다.
다소의 세세한 사실이 변경되는 일은 있다 해도, 결국 덴고라는 인간은 어디까지나 덴고일
수밖에 없다. (본문 p113)


과거는 과거일 뿐, 인위적인 변경은 시간에 의해서 모조리 취소되어 버린다.
한번쯤 생각하고 지나치는 것들이지만, 이런 것들을 글로 표현하는 섬세함이 일반인과
작가의 차이가 아닐까? 소설에서의 이야기라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공감이 간다.

'설명하지 않아도 돼' 덴고는 말했다.
설명을 듣지 않으면 모른다는 건 설명을 들어도 모르는 것이다. (본문 p252)


이 부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나에게도 그렇다.
논리적으로 이해하면 다소 논란의 소지가 있는 말이지만, 세상이 그렇게 생각된다.
세상에 너무나 많은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있기에 우리는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결국 수많은 생략들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을 받아들이기에 자꾸만 이런 생각들이
들어온다. 모든걸 다 설명할 수는 없는거다.

'자네는 두려워하고 있어. 예전에 바티칸 사람들이 지동설을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했던 것처럼.
그들 역시 천동설에 절대로 오류가 없다고 믿었던 건 아니야.
지동설을 받아들이는 것이 몰고 올 새로운 상황이 두려웠을 뿐이지.
거기에 맞춰 자신들의 의식을 재편성해야 한다는게 두려웠던 것뿐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가톨릭 교회는 아직도 공식적으로는 지동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자네도 마찬가지야. 지금까지 오랫동안 몸에 걸쳐온 단단한 방어의 갑옷을 벗어던지는 걸
두려워하고 있어. (본문 p333)


변화하기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 내 자신도 그렇다.
언제나 과거의 성공에 대해서 고수하고 그것이 현재의 최선인듯 행동하는 것.
하지만 거기에 새로운 주장들이 항상 더해지기에 세상은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새 중에서 '팔색조'라는 새가있다. 여러가지 색을 가진 아름다운 새.
우리가 변화에 대해서 '팔색조'를 많이 비유하는데, 상황에 맞추어 자신을 적절하게
변화시키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저 부럽고 감탄할 뿐이다.

1Q84의 세상은 결말로 달리고 있다. 3권에서 계속.......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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