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얼프린스의 독서노트/여행기행

모독 - 박완서 작가 글과 민병일 시인의 사진

728x90
반응형

박완서 작가와

민병일 시인의 사진이 어울어 진

네팔, 티벳 기행





모독 / 박완서 글, 민병일 사진 / 열림원


  네팔, 그리고 티벳, 아마도 여행이라는 단어의 끝자락에 다다른 이들이 찾게되는 마지막 종착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수많은 여행들이 있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은 한정적인지 모른다. 안락한 호텔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멋진 도시와 중세유럽의 유적지들, 또는 푸른 바닷물과 백사장, 그리고 리조트 안에서의 여유로운 하루하루 이런 것들이 우리가 설명하는 여행이라는 단어의 정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주변에서 그런 여행에 질리고 질려 끝에 다다르면 결국 네팔, 티벳에 다다르는 것이 대부분의 여행가(?)가 아닌가 생각된다. 책 안에서의 박완서 작가도 그런 마음에서 마음의 안식을 찾기위한 하나의 장소로 네팔과 티벳을 방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여행을 글로 펼치고 있는 내내 표현되고 있다. 직접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 여행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래도 글로 읽으면서 빠져드는 기운 안에서나마 간접체험으로 그 경험들을 맛본다.



하나같이 무욕하고 겸손하고 착해 보이기만 하는 이곳 사람들을 바라보며 문득 혼란스러워졌다. 부처와 인간, 성과 속이 헷갈렸다. 내가 보기에는 있는 그대로의 저 사람들이 바로 부처로 보이고 절 안의 부처가 훨씬 더 인간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저들이 부처에게 그리도 열렬하게 그리도 겸손하게 갈구하는 건 무엇일까? 우리가 인간적인 욕망을 초극하려고 몸부림치듯이 저들은 저절로 주어진 성자 같은 조건을 돌파하려고 몸부림치는 게 아닐까 하고. (본문중에서 p47)


   살아가다보면 때로 내 자신에게 큰 질문을 던지곤 하는 때가 있다. 물론 그런 때가 어떤 큰 일을 겪고 나서일 수도 있지만 그저 아무런 생각없이 일상에 지쳐 요즘말로 멍 때리고 있다가도 생각나는 것이 바로 '왜 살까?' 이런 의미없어보이는 질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언젠가는 이런 무의미해 보이는 질문 안에서 종교라는 것에 집중해서 살아가기도 하고 또는 그런 의미를 찾아가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거나 철학에 몰두해 보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 아닐까? 아마도 네팔, 티벳, 인도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우리가 외형적으로 느끼는 것이 바로 종교라는 그들의 삶의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있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자본주의 논리 안에서는 그저 의미없는 행동으로 보이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삶이고 그 삶을 뛰어넘어서 다음 생에서의 바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하니 단순하게 문화의 차이라고 하기에는 정말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영혼을 떠나 보낸 육체에 대해서는 그게 비록 인간의 시신이라 할지라도 미신적인 공포감이나 신비화 없이 냉정하게 직시하는 능력 또한 티베트 민족의 상냥함과는 또 다른 엄혹한 면이 아닐까. 야크를 중히 여기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야크에서 나는 건 털끝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 완벽한 이용으로 표현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랑, 연민, 자비 등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공통의 정서라고 해서 그 사랑법까지 똑같을 수는 없지 않을까. (본문중에서 p158)


   종교적 논리가 아니더라도 그들의 삶 안에서의 인간의 육신이라는 것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그저 하나의 물체라고 인식된다 하더라도 그들의 여러 풍습 안에서의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은 우리의 그것과 정서적으로 너무나도 달라보인다. 주변 사람들이 갑자기 떠나갈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그저 살아가는 것이 별거 아니구나 허무하구나로 그치지 않듯 그들에게는 다음생으로 표현되는 단순한 하나의 삶의 마감은 아닐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다보면 필자가 저자와 같은 위치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이라는 시각으로 읽어보게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같은 위치에 있기를 원한다로 바꿔 말할 수 있겠다.



그들의 종교가 마냥 개인 구원의 차원에만 머물러 있다면 누가 그들의 종교를 존경은 커녕 존재 가치라도 인정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열정적인 상승 욕구를 평면적인 이웃한테도 좀 확산시켰으면 싶었다. 이방인이 티베트에서 장려한 사원과 수많은 불상을 보는 일은 눈에는 최고의 사치요 충격이었지만, 그 이상은 되지 못했다. 마음의 평화와 기쁨은 못 느꼈다. 호화와 사치를 극한 불상과 이 땅의 극빈층이 저절로 대조가 되어 불상에서 느끼고 싶은 자비를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본문중에서 p194)


   어떤 여행객이던 같은 것 아닐까 생각된다. 어차피 여행객은 그들에게 이방인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언젠가는 떠나야 할 사람인 것이다. 그들의 삶과 같은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여행객이 아닌 이미 그곳에서 살아가는 입장이 되어 보기 전에는 느낄 수 없는 그런 것이리라 생각된다. 아마도 그렇기에 몇 일간의 여행을 통해서 그들의 입장을 이해했다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것이 아닐까? 아마도 여러번의 방문을 통해서 시각적인 여유는 가질 수 있을지언정 알 수 없는 경지의 평안함을 얻는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또 네팔을 다녀왔다. 별 볼일 없는 나라에 무엇하러 그렇게 자주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더러 있다. 나는 농담처럼 보약 먹는 대신 가는 여행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아마 진정한 휴식을 위해서일 것이다. 실상 온통 약탈한 것투성이인 세계 유수의 박물관이나 신자 없는 장려한 성당, 그림 엽서하고 똑같이 가꾸어놓은 전원 풍경에 실컷 질리고 감동하고, 그런 문화를 가진 민족이니 뭐라도 배워야 할 것 같은 압박감으로 그들의 일상적인 언행까지를 흘금흘금 관찰하게 되는 유럽이나 미국 여행이란 얼마나 피곤한가. (본문중에서 p351)


   읽다보면 그저 찔리게 만드는 문구들이다. 그저 놀라움으로 두 눈을 연신 돌려가며 돌아다녔던 유럽여행의 기억이 그저 천박한 발걸음인냥 생각될 느낌이다. 하지만 그 또한 어떤 사람의 취향이거나 또는 하나의 단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행에 대한 가치는 각자에게 다른 것이고 또 그 가치라는 것이 취향을 떠나 목적성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더욱 다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때로는 리조트가 필요할 수 있는 것이고, 인생의 어느 저편에서는 티벳이 필요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쉽게 가기 어려운 네팔, 티벳의 여행 안에서 그들의 삶을 바라보며 저자가 말하는 언어가 무엇인가 그곳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듯한 느낌은 작가의 말처럼 보약같은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하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 Real Prince -


팁텍톡!의 글이 유용하다고 생각되시면 아래를 활용하셔요.
Follow JoyfulPrince on Twitter 트위터로 만나고 싶으시면 눌러주세요.
  이메일로 연락하고 싶으시면 눌러주세요.


반응형

'리얼프린스의 독서노트 > 여행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터사이클 세계일주  (0) 2015.03.09
고현정의 여행, 여행  (0) 2015.01.18
Self Travel 스위스  (1) 2014.09.10
중국 만리장정  (0) 2013.07.09
바다건너 밥 먹으러간 사연  (0) 2012.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