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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이 재미있는
읽기 쉬울줄 알았는데

나름 어려운 책

 

 

 

 

 

 

 



지금 나는 고민하지 않는 방법을 고민중이다 / 엘리엇 코헨 / 애플북스


 

만약 당신이 의무적으로 걱정하는 성향의 사람이라면, 제발 이책을 읽은 이후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강박적인 걱정 습관을 극복해야겠다"라는 결론에 도달하지 말아 주길 바란다. 다시 말해,

본인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유가 다른 사람의 안녕을 위해서라고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뜻이다.

그러니 부디 '나 자신을 위해 의무적인 걱정을 극복해주길 바란다. 그러면 주변 사람들도 그 혜택을 입게 된다. (본문중에서 p19)

 

가족이나 직장이라는 조직 단위에서 보았을때,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영향을

끼친다. 쉽게 말해 신경쓰이는 일이 되어버린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고, 좋은일이 생겨도,

걱정이라는 녀석이 개입하면 무엇이든 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곤 한다. 결국 걱정을 최소화하는

과정은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라는 것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자기 희생적인 생각으로 의무감에 넘쳐 걱정을 해대는 사람은 이성적으로 걱정을 멈추려 하기 보다는 세상이 완벽하거나, 거의 완벽해지길 요구한다. 만약 이것이 당신의 모습이라면, 당신은 걱정만 하다가 늙어갈 게 분명하다. 평생 놓아버릴 수 없을 만큼 심각한 걱정을 안겨주는 문제 상황을 밤낮으로 찾아 헤매게 될 테니 말이다. (본문중에서 p32)

저자는 걱정이라는 부분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완벽주의자의 자세로 말하고 있다. 완벽주의자에게 걱정이라는 존재는 결국 완벽하다 라는 상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는 걱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된다.

사실상 이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고, 또 그럴수도 없다. 단지 완벽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자세만이 있을 뿐이다.

 

세상이란 우리가 아무리 간절하게 원하더라도 절대 모든 것을 미리 결정할 수 있는 곳이 아니며,

반드시 이상적인 곳도 아니다. 오히려 별다른 놀라움이나 도전할 만한 것도 없고, 그다지 흥미로울것도 없는 다소 지루한 장소라 할 수도 있겠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미래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는 애슐리의 무능함이 상황에 따라선 절망해 늘어져 있기보다는 삶을 즐겨야만하는 이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본문중에서 p79)

그렇다. 때로는 세상에서 악이라는 존재가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정말 선한 것만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하지만 그런 세상을 상상해보면 정말 아무런 기대도

없이 새로울 것도 없고 또 노력할 필요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 그 자체가 될 것 같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지금의 세상을 조명하면 이렇게 예측할 수 없고 변화무쌍한 세상이 우리에게는 더 살만한 세상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죽음 앞에서 삶조차도 두려워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실망스러운 꿈, 무산된 희망, 헛된 경험'등으로 정의할 수 있을 뿐이다. 사르트르가 말한 바에 의하면 우리는 자아 행위의 총합이다. 행동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결국 충족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 (본문중에서 p123)

결국은 저자가 말하는 고민하는 사람들은 걱정하는 시간에 행동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행동을 통해서 걱정을 해결하는 것을 실행할 수 있고, 또 그 일에 몰입해서 걱정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은 자신을 제어하는 힘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걱정이라는 것도 자신이 직접 몰아내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결정을 하든 어느 정도의 위험부담은 지고 갈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고, 그 결정에 따른 혜택과 위험부담을 저울질해야 한다. 이 점만 정확히 이해한다면, 적어도 확실성을 제공하지 않는 세상에서 그것을 요구해야 하는 불안한 심리만큼은 피해 갈 수 있다. (본문중에서 p134)

확실성과 불확실성. 때로는 그런 부분을 판단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명확한 것은 자신이

고민하는 대상에 대해서 지금 당장 또는 근시일 안에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 걱정거리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존재

라면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이 책의 표지처럼 매일밤 잠을 못 이루게 될 것이다.

 

실제로, "내가 나쁜 일을 했어"와 "나는 나쁜 사람이야"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만약 나쁜 일을 함으로써 나쁜 사람이 된다면, 우리가 모두 나쁜 일을 해본 경험이 있으므로 당연히 모두가 나쁜 사람이 된다. 그러니 행위와 행위자를 구분하자. 비록 내가 하는 행위의 가치는 그렇지 않더라도, 나의 자아 가치는 늘 조건이 없어야 한다. (본문중에서 p156)

 

누군가는 위의 두문장을 말장난이라도 폄훼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말장난 같은 말들에도

각각의 의미가 숨어있고 그 의미는 우리의 무의식 안에서 뭔가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단정적으로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포기하기 보다는 부분적으로 잘못한 부분은 제대로 반성하고

자신의 자아 자체에 대해서는 꼭 껴안아 주자. 행위와 행위자를 구분하라는 말. 기억해야 겠다.

 

비록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해도, 아는 바대로 행동할 수는 있다. 이것은 인간이 아무리 오랫동안, 그리고 아무리 힘들게 지혜를 찾아 헤매더라도, 세상에는 늘 인간의 능력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진리가 남아 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지식의 우물 밑바닥에 도달해서가 아닌, 합리적인 노력을 통해 도달한 곳에 마지노선을 긋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신, 자기 자신에게 행동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자. (본문중에서 p189)

정말 마음에 와닿는 말이다. 아는 바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말.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말을 나이가

들어갈수록 깨닫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깨달음의 부작용은 자신의 부족함을 매일 깨닫기 때문에

자칫 의기소침해지고 무엇인가를 말할때 자신감이 없어질 수 있다. 그럴수록 아는 범위 안에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자아를 불러내어 표출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고민없이 당당하게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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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시절 이후로 생각해본적 없는
철학의 메시지
삶의 의미라는 거창한 의미로
다시 철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준 책








삶의 의미라는 커다란 물음 빅 퀘스천 / 줄리언 바지니 / 필로소픽 / 2011년

'삶의 의미' 와 어렵다. 앞에서 철학에 대한 흥미를 다시 불러준 책이라고 말했는데
사실 이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최근에 사람들이 책을 읽는 주요분야는
누가 뭐라고 해도 역시 '자기계발'과 '경제/경영'류가 아닐까 생각된다.

오래간만에 접하는 철학에 관련된 언어들이 내 두뇌의 촉각을 곤두서게 만들었고 최대한
집중하고 긴장하면서 읽어야만 했다. 하지만 다 읽고나니 나름대로의 인문학 안에서의
철학의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책에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 '거품을 빼고' 설명할 것이다.
즉 '인생의 의미'라는 신화적이고 신비로운 하나의 질문을, 인생의 다양한 의미를 다루는
전혀 신비롭지 않은 작은 질문들로 환원할 것이다.
이 방법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그 이하이기도 하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서문중에서 p17)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최대한 단순하게 간결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가
이 책을 읽기전에 우선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답이 없겠구나'하는 예상을 하고 읽었다.
왜냐하면 이런 주제는 정답이 있다기 보다는 각자가 생각하는 원칙과 생각의 줄기가 나름의
사상을 만들어주는 주제이기에 그저 저자의 풀어가는 방식이 궁금했을 뿐이다.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인생에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
인생의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이 목적이 창조주가 꿈꾸던 것인지, 스스로 부여한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인생에 목적과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이 창조주에
의해 주어진 의미보다 열등하다고 볼 이유는 없다. (본문중에서 p30)


그렇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각자가 우리의 인생에 대해서 어떤 목적과 의미를 부여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목적과 의미가 정답을 이루는 인생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인생이 아닐까.
왜? 바로 우리각자가 인생의 주인이니까.

최초의 목적이 영원한 목적이 되는 것도 아니고 최초에 목적이 없었다고 해서 영원히 목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목적은 획득될 수도, 없어질 수도, 변경될 수도 없다. 바로 이것이 삶의
기원이 사람의 목적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해주지 못하는 이유이며, 또한 생명이 어떤 목적을
위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자연주의적 믿음이 인생에 목적이 있을 수 없다는 뜻 아닌 이유이다.
(본문중에서 p40)


저자가 삶의 의미에 대해서 풀어가는 방식이 흥미롭다. 큰 주제에서부터 하나하나의 부제를
뽑아내어 삶의 의미와 관련이 있는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가고 있다.
정답은 없지만 확실한 자기주장은 있다.

미래가 과거를 정당화할 만큼 좋지 않을 수 있다는 것만이 위험요소가 아니다.
그 미래가 영원히 오지 않을 위험도 있다. 인생의 목적을 미래에 두는 것이 위험한 가장
큰 이유는,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존재인 우리가 미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일흔은 넘게 살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희망사항에 불과한 일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는 꼴이다. (본문중에서 p54)


우리가 인생에 대한 설계를 하고 계획을 세울때, 이런 가정을 많이 할 것이다.
30대에는 뭘하고, 40대에는 뭘해서..어쩌구 저쩌구... 이런 가정에 대한 일침이 아닐까?
물론 계획없이 살아가라는 말이 아니다. 미래에 사용할 나의 즐거움을 오늘 즐기겠다는
그런 논리에서의 경고도 아니다. 단순하게 미래의 목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해부하고 있다.
삶의 만족 자체를 미래의 무엇인가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이
기존에 자기계발을 위한 미래지향적 사고와 달라 신선하다.

철학은 종종 평범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물을 필요조차 없어보이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진보한다. 가장 화나는 질문 중 하나가 "...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죠?"이다.
철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단어의 의미를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철학자들이 토의에 등장하는 용어들을 명확히 하기위해 단어의 명확한
정의를 내려달라고 요구하면 짜증을 내기도 한다. (본문중에서 p86)


직업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이 서평을 쓰고 있는 필자의 경우도 이런 대화를 즐긴다.
처음에는 피곤하게 뭐하는 짓이냐하고 생각했지만, 꼭 철학적인 대화가 아니더라도 논리적인
사고의 정리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대화방법이다. 이런 대화가 한편으로는 철학자들의
대화방법이라고 하니 더욱 흥미가 간다.

행복이 가치 있는 삶의 목표라는 것, 그 자체로 가치 있는 무엇이라는 게 분명한 듯 보이지만,
다른 한편 행복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는 철학자들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행복을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자명함과 난해함이 섞이는 이유는 '행복'이란 말이 명확한'
의미나 지시 대상을 가진 단어가 아니라 일종의 모호한 지칭어이기 때문인듯하다.
(본문중에서 p124)


이렇듯 행복이라는 것이 모호한 지칭어 이어서 우리에게는 자신만의 행복을 해석하기 위한
철학적인 접근이 꼭 필요한 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실체도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추구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또 그 의미를 삶속에서 즐길 수 있을까?
결국 모호한 의미의 추상적인 단어 또는 용어라 할지라도 자신만의 명확한 해석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추구할 수 있는 실체로 다가오리라 믿는다.

행복의 가장 큰 장애물은 어쩌면 행복에 대한 현대의 신화 자체일 것이다.
행복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으면, 다른 사람들이 타당하게 바라는 것 이상을 가져도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우리는 인생에서 당연하게 여길 수 없는 것들을 거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위험에 처해 있다. 구식으로 들리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에 감사하는
법을 잊었고, 갖지 못한 것을 원망할 줄만 알게 되었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 더 많이
가져야만 만족할 수 있는 갈망과 다름없어졌다. 바로 그 갈망이 문제다. (본문중에서 p138)


이 이야기는 진부해 보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현실이다. 모두가 행복에 대해서 같은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접근하기에 더욱 불행해 지는 것 같다. 좋은 집, 좋은 차를 가지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다는 절대적인 기준을 내세우기에 바로 우리앞에 있는 행복을 인식하지 못하는 아닐까? 때로는 눈을 주변으로 돌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자신만의 행복을
발견해보자. 그러면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

가장 큰 위험은 자기계발 문화가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 대한 희망과 결핍감을 조장하는
방식에 있다. 이런 책들은 너무나 많은 것을 약속하며 그것을 쉽게 획득할 수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인생은 단순히 X, Y, Z라는 일을 하는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인생이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우리는 성취와 유의미한 인생을 위한 완벽한 처방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본문중에서 p160)


현 세태에 대한 따끔한 충고다. 실제로 자기계발 서적을 읽고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다 할 수 있을것 같고, 뭐든 잘 될 것 같다. 물론 현실은 냉혹하기 그지없다.
최근 자기계발 서적들이 다 그렇게 보인다. '그저 믿기만 해라. 그러면 이루어질 것이다.'
라는 방식의 책들. 실제로 이루어졌는가? 진심으로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차라리 자기계발 서적이 아니라 종교라 말하고 싶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인생에 대한 처방은 자기 스스로 내리는 것이 아닐까?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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