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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좋은문구들이 많아
태깅한 포스트잇이 세기 어렵다.
뭔가 자기계발 서적들의 패턴이 보인다.
하지만 패턴만 보인다.
실천의 힘은 아직 저 멀리에......









보이지 않는 차이 / 연준혁, 한상복 / 위즈덤하우스 / 2010년

요즘 책들은 그바닥의 말로 제목을 정말 잘 뽑는다.
서점에 가서 책 표지를 보고 있으면 정말 한 번씩은 펼쳐보게 만들어준다.
이책도 짧은 제목에서 함축되어있는 의미가 궁금하도록 만들어져 있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이 책은 행운과,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탐사 기획물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차이를 탐색하다가 우리는 그것이 운이 작동하는 매커니즘과
닿아 있음을 발견했다. (프롤로그 p10)


운이 작동하는 매커니즘이라는 측면에서 이책은 동양과 서양의 것들이 잘 버무려져 있다.
대부분의 자기계발 관련서적들이 서양의 것을 많이 차용해서 써지는데 반해 동양철학의
사상을 일부 차용해서 더욱 자연스럽게 만들어주고 있다.

행운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운은 구른다. 글자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다.
'운'이라는 글자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
운 = 천천히 걸어갈 착 + 덮을 멱 + 수레, 바퀴 차
-> 수레 위에 싣고 덮은 뒤(그래서 알 수 없다) 천천히 이동해간다. (본문중에서 p24)


어릴적 한문을 배우던 기억이 난다. 문자의 기원을 알아보면서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이해해
갈 수 있는 것들. 바로 이 책에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운이라는 것에 대해서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전설적 투자가이며,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피터 번스타인은 '포브스'가
선정한 대부호 1302명을 대상으로 성공 요인을 분석했다. 대부호들의 공통점은 네 가지로
압축됐다. 승부욕과 경쟁심, 그리고 행운과 타이밍이었다. 승부욕과 경쟁심은 내적인 요인이고,
행운과 타이밍은 외적인 요인이다. 성공의 절반은 '어찌해볼 수 없는' 외부의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본문중에서 p31)


어찌해볼 수 없는 외부적 영향. 하다못해 떠나고 있는 버스를 붙잡아보려해도 잡기 어려워
허탈해하고 있을때 떠난 버스의 사고소식이 들리듯 우리의 인생은 어쩔 수 없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이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요소들도 결국은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 일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행운과 타이밍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데 익숙해져 있다. 선명하게 보이며, 이해할 수 있으면서
증명과 예측이 가능한 것만을 진실이라고 믿는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 않은 것은 진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논리적이며 불합리하다는 딱지를 붙여서 관심 영역 밖으로 밀어낸다.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행운은 이해하거나 설명 또는 증명과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논리와 합리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이성과 인식을 넘어서는 영역인
것이다. (본문중에서 p41)


어떤 광고계의 유명한 사람이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로직과 매직의 절묘한 조화 속에서
살아간다고. 세상 모든일이 어찌 논리적인 증명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을까?
일을 하다보면 오로지 모든 일을 논리에만 맞추어 이해하려는 사람들을 많이본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 논리의 벽을 뛰어넘지 못한다. 우리는 논리를 뛰어넘는 그 무엇인지
모를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행운의 영역인 것이다.

행운을 불러들이는 것은 '불모지에서 지하수를 찾아내는 방식'과 비슷하다.
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장소를 선정하고 파이프를 박는다.
지하수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수많은 시도'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물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파이프를 뚫는다. (본문중에서 83)


우리가 '인디안 기우제'라는 문구를 많은 책에서 접해 봤을 것이다.
인디안들이 기우제를 통해서 항상 비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바로 비가 올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단순한 방법이었던 것처럼, 흔한 말로 될때까지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 가능성에
대한것은 철저하게 검증하고 해야겠지만,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 믿었던 행운의
영역도 결국은 열정과 그에따른 노력에 의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격변기에 큰 행운의 기회가 몰려 있는 것일까?
그것은 격변기가 게임의 규칙이 바뀌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격변기는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이다. 기존 패러다임에 커다란 균열이 생기면서 새로운 승자와 패자가 출현한다.
안타깝게도 규칙에는 자비심이 없다. 우리 스스로 변화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규칙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 (본문중에서 p116)


필자는 삶이라는 자체를 웨이브 즉, 파동이라고 표현한 적이있다. 개인적인 차이에 의해서
그 파동의 크기는 각자 다르겠지만, 인생에는 상승곡선과 하향곡선의 반복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논리이다. 바로 상승곡선이 예상될때 그에 알맞은 자신의 행동을
해야만 바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바로 계획에 의한 준비이다.

벤저민 그레이엄은 자신의 책 '현명한 투자가'를 통해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한 번의 커다란 행운이 평생에 걸친 평범한 노력들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낸다.
그러나 그런 행운 뒤에는 철저한 준비와 훈련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본문중에서 p195)


결국 아무런 대가없이 얻어지는 행운은 없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최근에 화두로
떠오르는 1만시간의 법칙에서 말하듯, 무엇인가에서 지속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노력 뿐만아니라 그분야를 바라볼 수 있는 식견을 얻기위한 수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대중은 그 결과만을 바라보고 '행운'이라는 단어를 되뇌일 뿐이다.

지금은 요구하는 게 많은 시대다. 스페셜리스트이면서 제너럴리스트이면서 휴머니스트이기를
한꺼번에 요구하는 시대다. 우리는 이른바 컨버전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컨버전스 시대에 적합한 인재는 다양한 지식을 연결시켜 전혀 낯선 것으로 만들어낼 줄 아는
창의성 넘치는 사람이다. (본문중에서 p263)


전에 인문학 관련 책을 읽을때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연계, 융합, 통섭과 같은 단어들을
찾아본 적이있다. 최근에는 수많은 지식들이 오픈되어 있다. 누구나 접할 수 있지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은 아니다. 우리는 융합과 통섭이라는 단계를 거치기 위해서
수많은 지식들을 이해하고 그들간의 관계를 파악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금의 세상이 요구하는 인재상인 것이다.

우리는 남의 삶을 따라 살면서 비평에 민감해졌고 스스로 비평가가 되었다.
제일 편한 게 비평이기 때문이다. 남의 흉을 보는 데는 대단한 노력이나 행운이 필요 없다.
밑천 안 들이고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비평이다.
영국의 백만장자 콜린 터너는 "수많은 동상들은, 살아 있을 때 비판을 받았던 사람들을 위해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비판을 했던 사람들을 위해 세워진 동상은 없다.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을 멈추는 그날이, 바로 당신이 성장을 멈추는 날이다."
(본문중에서 p296)


일을 할때도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고객들 중에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문서에 대해서 지적하기는 정말 쉽다.
하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정말 어렵다. 우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밑그림을 계속해서 그려야 한다. 그리고 전체의 이미지를 조망할 수 있게되면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드높이면 이렇게
생각하자. '아. 뭔가 나의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구나. '

성공하는 사람들은 비평으로부터 자유롭다. 비평가들은 남과 '다른 점'을 흉본다.
그러나 성공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점'은 곧 '나다움'이다. 나다움이야말로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며, 성공의 원동력이다. 만약 그들이 나다움을 죽이고 하루살이처럼 남들을
쫓아다녔다면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인생을 살았을 것이다. (본문중에서 p297)


하루하루에 따라서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해간다. IT분야만 그런것은 아니지만 기술의
생명주기가 너무나 짧아서 새로나오는 기술들을 쫓아가기에도 하루는 너무나 짧다.
하지만 쫓아가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언제까지 쫓아가기만 하면 앞서갈 수 있을까?
나만의 목소리, 나만의 생각, 물론 기존의 것들 기반에서 나오기는 하지만, 적절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 쫓아가는 시간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만
적절하게 선별하여 최대한 짧게 하자. 나만의 목소리가 필요한 세상이다.
그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차이'아닐까?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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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방송에서 잘한일 중 하나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인문학
가깝게 느껴보자.







인문학콘서트 / 한국정책방송 / 이숲 / 2009년


아무래도 기술관련된 직종에서 일하다보니 모든 면에서 건조해지기 쉽다.
그리고 인문학이라고 하면 잘모를뿐 아니라 독서를 하면서도 자기계발이나 경제경영 관련분야 책을
주종으로 읽게되어 얄팍한 지식이 금방 드러나버리기 일쑤였다. 항상 아쉬웠던 부분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서 고른책이다.


기자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한 사람에게 벌어지면 '사태가 고조되어 있다'
라고 쓰고, 두 사람에게 벌어지면 '만연한다'라고 쓰는데, 세 사람째 벌어지면 아예 기사를 쓰지 않는다는 겁니다.
중요하더라도 관심에서 벗어나거나 일반화된 사안은 다루지 않는 것이 언론매체의 속성입니다.
인문학조차도 화젯거리가 되어야 기사화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인문학 열전'에서는 주제에 화제성이 없어 안된다는 평가를 전혀 개의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서문중에서 p12)


서문내용에서 책의 방향과 의도를 밝히고 있다. 사실 누군가 찾아서 일기 전에는 아니면 방송을 보고
참 좋았다는 느낌이 들어 읽기 전에는 쉽게 찾아읽기 어려운 책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문학 대중화를 위한 여러 움직임이 있어 인문학 관련서적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있어 보이니 꼭 화제성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통합은 물리적으로 이질적인 것들을 그냥 한데 묶어놓은 것입니다.
융합은 하나 이상의 물질이 함께 녹아서 화학적으로 서로 합쳐지는 것을 말해요. 그런데 그날 그 자리에서
한두 분이 '거기서 그치면 통섭이 아니지. 거기서 뭔가 새로운 게 만들어져야지'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자식을 낳아 달라는 얘기입니까? 그럼 통섭은 생물학적이군요?'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럼 통합은 물리적이고, 융합은 화학적이고, 통섭은 그냥 거기 섞여 있는 상태로, 녹아 있는 상태로
멈춘게 아니라 거기서부터 뭔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게 만들어지는, 번식하는, 생물학적인 어떤
합침을 의미한다는 거지요. (본문중에서 p48)


통합, 융합, 통섭 언제나 용어의 정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주 쉽게 풀어져있어 좋다.
통합과 융합은 최근에 일반에도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된 것 같다. 통섭의 경우는 아직은 일반에 잘 보이지 않는
용어인데 인문학콘서트를 통해서 통섭이라는 용어와 친해진 것 같다.
이런 용어의 정의에서만 보더라도 인문학이 최근 기술집약적인 학문에 밀리는 느낌이지만 사실 그 깊이에
있어서는 어느 학문이 못하다고 말할 수 없는 모습을 만들어준다.
최근에는 기술적인 부분에 예술및 인문학의 모든 총체적인 학문을 결합해서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인기를 얻고 있다. 결국 인문학을 이해해야만 사람이 필요로하는 무언가를 만들 수 있다고 해석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기본기를 뭐라고 합니까? 수학능력 즉'수능'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수능시험이라는 걸 보잖아요. 그럼, 수학능력자들이 대학에 들어와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아주 거칠게 학생들을 몰아세웁니다. 너희가 무슨 수학능력자냐, 수학장애우들이지.
분야가 조금만 달라져도 완전히 속수무책인 아이들이 장애우지, 무슨 능력자입니까? 미국에서는 이미
중고등학교에서 그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대학에서 전공을 자유롭게 옮겨 다닙니다. 제가 하버드에서
가르칠 때 전공을 다섯 번 바꾸는 녀석도 봤어요. 비슷한 학과가 아니라 문과, 이과, 예술학과를 옮겨
다니더라고요.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 아이들에게 이미 그런 소양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죠.
(본문중에서 p58)


최근에 교육계에 이슈가되는 내용이다. 사교육의 짐을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해결한다는 것.
결국은 그 해결방법의 핵심이 기본기에서 나오는데 그 기본기가 바로 공부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학문도 결국 한가지 학문을 배우기위한 과정과 그 원리를 깨닫고 나면 다른 학문을 접해도 같은 방법으로
쉽게 터득할 수 있다는 것 그것 아닐까?
그래서 인문학이라는 학문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미국의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화가인 폴 호건은 상상부터 하라고 말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의 세계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실재를 보면 어떻게 새로운 무엇을 찾을 수 있겠는가?
환상을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춘 마음의 눈을 계발하지 않는다면 육체의 눈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본문중에서 p88)


우리가 자신이 원하는바를 이루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데 있어 그 목표를 정하는 것을
첫번째로 꼽는다. 목표를 정하기 위해서는 원하는 대상이 필요한데 항상 중요시되는 것이 바로
그 목표를 끊임없이 상상하여 최종적인 결과물을 머리속에 그린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면서 사용하고 있는 모든 기술들이 예전에는 우리의 상상속에서 나온것 아니겠는가


우선 자신을 안다는게 가장 중요한것 같습니다. 자꾸 남에게만 요구하지 않습니까?
미국의 존F케네디 대통령 연설에서도 국가가 너희에게 해줄 것을 묻지 말고, 너희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으라고 했지요. 오바마 대통령 취임 대에도 주권 이야기를 했어요. 주권의 책임이 있다는 것이죠.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해서 권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 같습니다. 남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남을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습니다. (본문중에서 p98)


너무나 당연하지만 실천은 어려운 그런 내용이다. 자기계발의 기본에 공통적으로 다루는 내용중 하나인
'네 자신을 알라!'라는 부분이다. 우선 자신의 현재를 똑바로 인식하고 이해해야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남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는
진리이다. 나로부터 출발한 내면의 나의 이해가, 외부의 사물을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니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이다.


자녀에게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오라고 하기보다는, 책을 많이 읽어서 교양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공부시키기보다는 자녀가 교양인이 되게하고, 직업은 뭐가 됐든 간에 3만 가지 중에서 하나를 택해서 자녀가 그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도록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중에서 p100)


좋은 성적은 언제든지 받을 수 있다. 본인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때에 열심히 공부해서 이루면 되니까.
하지만 책읽는 습관처럼 어려서부터의 환경과 시간이 필요한 것들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주변에 아주 많다. 도서관에서부터 수많은 서점, 그리고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서도 책을 읽을 수 있으니 그 환경은 어느때보다도 좋아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정보 속에서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려면
독서하는 습관을 통해서 교양인으로 자라나는 기반에서 그 힘을 찾을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교육은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끄집어내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집어넣는다는 것은 영어니 수학이니 국어니 하는 것을 아이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죠.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는 교과목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 버렸잖아요.
그러나 하워드 가드너에 의하면 그런 지식은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학교라는 집중적인 과정에서는 학생의 내면에 숨어 있는 그 학생만의 소질, 적성, 능력을 끄집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죠.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사람마다 내적인 텃받의 질이 각기 다르다는 거예요.
(본문중에서 p116)


신선한 표현이다. 아이에게서 교육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숨어있는 소질, 적성, 능력을 끄집어 낸다.
그렇다. 사실 우리 나이에 어릴적에 자신이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 고민하면서 자라온 어린이가 얼마나 될까?
아무리 시스템이 잘되어있고, 좋은 시설이 있어도 어린나이에는 그런것들을 스스로 알아내기 어렵다.
그래서 교육을 통해 그런 자기의 발견을 도와주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역할 아닐까?


인물이 그다지 출중하지 못한 애인을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고 믿는 그 학생이 자기만 그렇게 생각하면
되는데 주위의 모든 학생에게 주먹을 휘두르며 '봐라, 예쁘지? 예쁘다고 안 하면 너 큰일 나'이렇게
강요한다면 문제가 아닐까요? 바로 이러한 교조주의적 태도, 원리주의, 근본주의적 자세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책에 나오는 내용을 문자 그대로 신봉하고 그것을 현실세계에서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태도가 분쟁을
낳고 테러로 이어지는 것 아닙니까? (본문중에서 p137)


위의 이야기는 비단 종교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의 모든 문제에 다 해당된다고 생각된다.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갈등을 겪고 또 그 안에서 분쟁이 일어난다.
분쟁의 가운데에는 결국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데에서 발생하는 사고적인 폭력이 있다.
우선은 내 생각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나와 다른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해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여유가 없나보다.


처음에는 책의 두께 때문에 읽기 어려워 보였던 책이지만, 실제 방송에 출연하였던 내용을 요약한 것이라
대화를 듣는 느낌으로 쉽게 읽을 수 있었고, 인문학을 그저 어렵게만 생각하다가 부담없이 대화형식으로
읽다보니 어느새 끝까지 읽게 되었다. 수많은 세월의 내공이 느껴지는 대화들을 간접경험으로 느끼다보니
인문학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인문학 중심의 북 포트폴리오는 구성해 봐야겠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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