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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듯 지루하지 않은
잔잔하면서도 간결하게 방향을 제시한 책
별것 아닌것 같지만 무엇인가 있는 책








행복한 이기주의자 / 웨인 다이어 / 21세기북스 / 2006년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애초에 신경질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신경은 성질을 부리지 않는다.
인체를 해부해놓고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성깔을 부리고 있는 신경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똑똑한 사람들은 신경질을 내지 않는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기에. 똑똑한 사람들은
의기소침해지기보다 행복을 선택하는 법을 알고 있다.
삶의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방금 그들이 문제를 '해결'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문제 해결 능력이 아닌, 자신이 행복하고 소중해질 수 있는 능력을
똑똑함의 잣대로 삼는다. 문제가 해결되느냐 안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본문중에서 p18)


우리가 기존에 알고있는 방법과는 사뭇다르다. 우리는 모든 방법이라는 것은 '문제해결'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두어왔다. 하지만 저자는 '행복한 이기주의자'의 조건으로 문제해결능력이 아닌
자신이 행복하고 소중해질 수 있는 능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자신의 행복과 자존감을 위한 방향으로 자신을 보호내나가면 자신을 위한 문제해결에
다가갈 수 있다는 메시지 아닐까.

성장을 동기로 삼는다는 것은 내가 인생의 모든 현재의 순간들을 직접 지휘한다는 의미다.
지휘를 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나는 그때 그때 대처에 급급하거나
세상을 그저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조지 버나드 쇼는 '워런 부인의 직업'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현 위치를 자신이 처한 환경 탓으로 돌린다. 나는 환경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스스로 일어서서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은 사람들이다.
만약 그런 환경을 찾을 수 없다면, 그런 환경을 만든다. (본문중에서 p39)


이 문장들을 읽는데에서 나는 숨이 차오른다. 언제나 자기계발 서적에서 내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거나 나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해왔지만, 저자는 그것이 결국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거나 없으면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요즘 말로 '정말 이것이 최선인지, 확실한 건지' 확인하려면 남에게 그 질문을 하기 전에
내가 확인해야한다. 결국 내 인생이니까.

진정 노이로제 없는 자기실현을 원하고 자신의 선택을 통제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그리고
현재 순간들의 행복을 얻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우리는 매우 어려운 과제, 즉 지금껏 몸에
익숙해진 습관을 떨치는 일에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그런 혹독한 정성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런 식의 자기실현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가 내 정신의 주인이며 나의 감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마음 속에 되새겨야 한다. (본문중에서 p40)


수많은 자기계발 서적에서 말하는 되새김. 반복의 미학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것을 외치던, 종이에 글로 표현하던 계속해서 반복해야 한다.
최근에는 트위터에 자신의 목표를 계속해서 외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남들에게 자신의 목표를 선언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으로 매일매일을 채워나가는 것도
이런 방법 중에 하나이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다보면 더욱 가까이 다가오는 목표가 더 크게
자신의 시야에 각인될 것이다.

정치가 부류는 대체로 신뢰받지 못한다. 그들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동조를 필요로 한다.
인정을 받지 못하면 그들은 설 곳을 잃게 된다. 따라서 그들은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집단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런 말을 하고 저 집단의 칭찬을 얻기 위해서는 저런 말을 한다. 말하는 사람이 모든 이의 마음에 들 요량으로 교묘하게 이랬다저랬다 입장을 바꾸면 진실은 있을 수 없다. (본문중에서 p72)


나이를 먹은 뒤에는 진실이라는 또는 정의라는 말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진실이라는 것은 없다. 오로지 의도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하는 말은 아니다. 주제에 따라서 다를 수 있지만 최근 사람들의 성향을
보면 진실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보인다. 그저 자신의 방향성에 따라 그 진실을 만들어내는
경향이 짙다. 나이를 먹으면서 이런 때가 타기에 원칙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사람들이 성공하나
보다.

부모가 몸이 아프다는 말을 들먹이는 것도 자식의 자책감을 만들어 내는 데 효과가 으뜸이다.
'너 때문에 혈압이 올랐다.' 등의 말을 하는 것은 효과적인 자책감 자극제다.
그뿐 아니라 으레 나이가 들며 몸에 고장이 생기는 것도 거의 모두 자식 탓으로 돌린다.
그런 자책감을 짊어지고 다니려면 웬만큼 어깨가 넓어서는 안 될 지경이다. 또한 그런 죄책감은
말 그대로 평생 지속될 수 있으며, 특히나 마음 약한 사람이라면 부모의 죽음도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본문중에서 p126)


평생 지속될 수 있다는 대목에서 뜨끔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습관처럼 하는 말이 아닌가.
'누구 때문에 아빠/엄마는 너무 아프다.' 아무생각없이 하는 우리의 말이 아이들에게는
눈덩이처럼 큰 무게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모른다.
왜?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이 나지 않아서? 또는 우리도 어릴적 그런 말들을 듣고 자라왔으니까?
회사에서 자신의 상사에게 말을 조심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그 반만큼이라도 주의할 필요를
느낀다.

걱정할 것 없다! 아무것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 때문에
노심초사하면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걱정을 해도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걱정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 또는 미래에 일어날 일 때문에 현재의 자신을 옭아매는 것으로
정의 내릴 수 있다. 걱정을 미래를 위한 계획과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장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경우라면, 혹은 더 알찬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경우라면 그것은
걱정이 아니다. 걱정이란 미래에 일어날 일 때문에 지금 어떤 식으로든 활력이 무디어지고
매사에 의욕을 잃는 상태만을 말한다. (본문중에서 p136)


우리는 흔하게 '지금 걱정해서 해결되지 않는 일이라면 걱정하지 않는 것이 낳다.'라는
말을 정말 밥먹듯 한다.
하지만 난 이말에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정말 해결되지 않는일인가?'
5분만 더 고민해보자. 아니 1분만 더 고민해보자. 정말 해결방법이 전혀 없는것일까?
운동선수들의 수많은 실패들, 과학자들의 끝없는 시행착오들...
정말 해결방법이 전혀 없는것일까? 우리는 어디까지 고민해 보았는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포럼'지 1930년 10월호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아름다운 경험은 신비다. 신비야말로 모든 예술과 과학의 진정한 원천이다.'
그는 신비가 모든 '성장과 자극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지의 것과 위험을 동일시한다. 확실한 것만을 상대하고,
내가 향하고 있는 곳을 항상 잘 아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도 되는 양 행동한다.
삶의 흐릿한 영역을 탐색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무모한 사람이나 하는 짓거리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놀라고 상처입고 최악의 경우에는 무방비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라 생각하는 듯
싶다. (본문중에서 p150)


인간은 참으로 간사해서 매우 바쁠때에는 좀 쉬었으면 하는 생각뿐이지만, 한가할때에는
일이 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기의 차이가 매우 작아 그저 비슷한
생활만을 계속해서 지속하다가 삶을 마무리하곤 한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즐거운가? 책을 읽으면서 감동에 눈물 흘리는가?
언제까지 소비자로써 온실 안에서만 생활할 것인가? 윈드서퍼에게 강한바람과 파도의
오르내림이 없이는 그들의 재미와 성취감도 없다.
파도에 몸을 싣자.

경직된 사람들은 결코 성장하지 않는다. 늘 해오던 방식대로 일을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현직 교사들에게 강의를 하는 동료가 있는데, 그는 곧잘 30년이 넘도록 교직에
몸담은 그 '노땅' 선생님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정말로 3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셨습니까? 한 해를 재탕해 30번 가르치신 건 아니고요?'
(본문중에서 p154)


웨인 다이어. 심리학자답게 정말 순간순간 뜨끔하게 만든다.
보통은 한분야에서 10년 이상을 꾸준하게 일하면 그분야에서 전문가가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변화없이 정해진 일만을 10년동안 반복한 사람에게 전문가라는 칭호를 수여할 수
있을까? 이미 변하고 있지만 다가올 미래에는 우리의 나이도, 과거의 경력도, 자신을 설명할
복잡한 수식어도 모두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그저 현재의 나만 있을 뿐이다.

도널드 마르퀴스는 뒤로 미루는 행위를 '어제를 따라잡는 기술'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에 나는
'오늘을 회피하는 기술'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뒤로 미루기는 바로 그렇게 작용한다.
누구나 하고픈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고픈 일들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일들 가운데 상당수는 마음속으로는 '해야지, 해야지'하면서도 절대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지금 할 수 있는 어떤 일을 나중에 하겠노라 결심하는 것은 '즐거운 바꿔치기'다.
지금 실행하는 대신 결심을 하는 것이다. 지금 바로 하지않는다고 해서 자신과 타협하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속일 수 있으니까. (본문중에서 p225)


저자의 글에서 같은 내용의 글이라도 표현에 따라서 이렇게 다르게 와닿을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즐거운 바꿔치기', 그리고 실행과 결심의 사이.
작게는 출근시간에 울리는 알람시계와 이불 속의 자신과의 '즐거운 바꿔치기'이지만
세월이 흐르면 그 간극은 너무나 벌어져 평범한 소시민과 성공한 유명인 사이의 변하지 않는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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