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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창조하는 힘'이라는 부제

뭔가 새로운 시도처럼

느껴진다.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구본형 / 와이즈베리


신화는 원시적 사고가 지어낸 어리석은 미신이 아니라 갖가지 문화에 의해 왜곡되기 전 인류의 원형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의식이 억압하고 있는 무의식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 우리의 내면을 통찰하게 하는 통로다. 신화는 영적 순례이며 산스크리트어로 길이라는 뜻을 가진 

'마르가'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이 바로 신화다. 꿈은 개인화된 신화이고, 

신화는 인류 전체가 꾸는 공통의 꿈이다. (본문중에서 p13)


아! 부제를 통해서 자기계발과 그리스신화와의 관계가 어떻게 있을까라는 것에 물음표를 달고 

있었는데 서문을 통해서 저자는 이런 의문점을 풀어주고 있다. 결국은 자기계발이라는 것이 

자기자신을 깨닫고 그로부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데에서 개선점을 찾아가자는 것인데 그 

매개체로 신화를 끌어들인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판타지 소설과 같은 것이 그리스 신화일 

수 있겠지만 그 안에서 자기계발을 찾아낸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신을 빚어 무엇을 만들어내고 싶은가?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여러 인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은 어떤 사람인가? 그 인물로의 변용은 기껏해야 분장된 거짓 자아를 얻는 것일까, 아니면 진정한 새 자아를 경영한다는 것은 하나의 나에서 여러 개의 나로 변용되어 스스로를 재창조해보는 것이다. 도시에 여러 개의 배역에서 물러나 하나의 나로 귀환하는 것이기도 하다. 

(본문중에서 p62)


최근에 육아관련 도서에서 또는 관련된 TV프로그램에서 '자존감'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재발견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이제는 익숙한 단어가 되었는데 바로 자기계발 안에서 가장 어려움을 얻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 있어 '자존감'이 매우 낮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예인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거나 성형수술 등을 통해서 낮은 자존감을 감춰보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결국 신화 안의 다양한 인물들 안에서 나를 어떤 또 다른 나로 만들어 갈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바로 저자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몽테뉴는 자신을 비롯하여 학문을 자랑하는 학자들의 천박함을 비웃는다. 길고 멋 부린 그의 글을 

대략 정돈하여 말하면 이렇다.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여 말로만 철학자이며, 행동이 비굴한 자는 

경멸받을 수밖에 없다. 그는 기억력은 채워졌지만 이해력과 양심은 비어 있고, 여기저기 다니며 

새가 곡식을 쪼아먹듯 마음에 드는 문장을 도둑질해오는 자에 불과하다. 그것을 소화하여 제 살로 

만들지 않는 한 그는 결코 현명해질 수 없다. (본문중에서 p135)


그 대상이 지식이던 다른 능력이던간에 우리 주변에는 지식 자체에는 욕심이 많지만 그것을

보고 확인하는 것에만 관심이 많은 이들이 대부분인 것 같다. 때로는 수집욕이 발동하여 

무엇인가에 미치게 되면 수집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정작 수집된 지식은 자신의 내면에

들여놓지 않는 경우를 많이 접하곤 한다. 사실 자신만의 서재를 만들고 그 안에 수만권의 

책이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농담처럼 말하는 흰것은 종이요, 검은것은 글씨라고 인지하는 

상태에 놓여있다면 수많은 장서가 그저 불쏘시개에 불과할 것이다. 결국 내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한 것인데 누구나 닿을 수 있는 영역은 아니기에 더욱 가치있는 것이 아닐까.



변화란 무엇인가? 나를 가둔 청동황소의 문이 밖에서 잠긴 것이 아니라 안으로 잠겨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나를 가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내가 나의

독재자였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안으로부터 청동황소의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잔인한 형구를 푸른 바다에 던져버리는 것이다. (본문중에서 p222)


나이가 들어감에 가장 공감하는 말이 바로 '적은 바로 내안에 있다'라는 말이다. 

우리가 시험을 보거나 스포츠 게임을 하거나 언제나 상대가 있고, 그 상대와의 경쟁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임하게 된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길 수 있는 것이던 아니면 자신만의 탁월한 능력을

항상성이라는 형태로 유지하고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의지라는 중요한

능력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자기계발 서적에서 수백번을 들어오던 바로 실천의 문제

라는 것이 내 안의 적인 내 자신을 이겨야만 다다를 수 있는 고지인 셈이다.



살 때는 내일 죽을 것처럼 사는 사람은 드물다. 만일 '오늘만의 삶'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산다면 매일 이별처럼 살 수 있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쓸데없이 비장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내 마지막 날을 유쾌하게 상상한다. 나는 그날이 축제이기를 바란다. 가장 

유쾌하고 가장 시적이고 가장 많은 음악이 흐르고, 내일을 위한 아무 걱정도 없는 축제를 떠올린다.  (본문중에서 p276)


구본형 작가의 글을 읽을때면 자기경영, 자기계발 류의 책을 쓰는 다른 작가와의 차별화된 요소로

뭔가 알 수 없는 여유가 느껴진다는 것과 깊은 사색에서 나오는 새벽의 내음이 그의 글에서

묻어나온다는 것이다. 


예전 영화중에 '사무라이 픽션'의 후반부에 '그 일이 있은후에 나는 하루하루를

죽을 힘을 다해 살게되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저자의 말은 정확하게 이 말에 반대가 아닌가.

흔히들 자기계발, 자기경영이라는 주제 안에서는 그 비장함으로 무장하여 마치 로버트와 같이

무장하고 또 무장하기를 권고한다. 하지만 저자의 책에서는 다른 느낌의 여유있는 사색이 느껴지니

한 번쯤 느껴봐야 하지 않겠는가?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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