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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부르면, 

희망은 내게 온다












희망의 귀환 / 차동엽 / 위즈앤비즈


차동엽 신부님 하면 역시 '무지개 원리'라는 베스트셀러가 떠오른다. 무거워 보일것만 같은 신부님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때로는 위트와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구성된 그의 글에서 삶의 지혜를 느껴왔는데

이번에는 희망이다. 바로 최근의 힐링이라는 단어와 함께 타고온 메시지인 것이다. 그와 함께

돌아온 희망의 메시지는 무엇일까.



희망놀이의 전형이다. 남들 같으면 '~때문에' 요 모양 요 꼴이 되었다고 둘러대기 좋았을 핑계거리를

'덕분에'로 둔갑시켜서 성공비결로 삼았으니, 가히 경지라 부를 만하다.

이쯤 되면 희망놀이는 이제 놀이의 즐거움에 더하여 수확의 기쁨까지 가져온다는 신나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얼마나 고무적인 발견인가. (본문중에서 p30)


짜증나는 아침 출근길을 떠올려보자. 뭔가 하나둘 꼬여가는 출근길 대중교통에서 발이라도 밟힌다면

이참에 잘걸렸다는 생각에 모든 분노를 응집시키는 것이 우리네 삶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우리네 기준으로는

정상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차동엽 신부가 말하는 '덕분에'라는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자신의 긍정의 이미지가 희망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근거 없는 희망', '헛소리', 이런 표현들은 내 희망철학의 핵심요소다. 여기서 진일보한 것이 바로

'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고 우겨라!'라는 다소 우악스런 나의 권면이다. 재작년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어느 목회자가 설교 중에 내 말을 인용하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뭐라고 하시더냐'고 

물었더니 대충 이랬단다. '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고 우기세요!' (본문중에서 p62)


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고 우기는 것! 그것이 바로 아무런 이유없이 희망을 찾는 것인가 보다.

누군가 자기계발 서적에서 또는 인문고전에서 희망의 메시지나 또는 공자님 말씀과 같은 좋은 문구

를 읽고서 하는 질문으로 '그게 말처럼 쉬운가', '직접 해보라지. 그게 되나.'하는 푸념들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저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던 '시크릿'의 메시지와 같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지전적인 인물로 우리의 입에 오르내리는 회장님의 말처럼 '해보기나 해봤어?'라는

메시지로 해석하고 싶다. 이른바 셀프 위로, 셀프 희망처럼 말도 안되는 문구로 우겨보고 싶어진다.



'사람의 뇌는 동시에 두 가지 반대 감정을 가질 수 없다. 곧 사람의 머리에는 오직 한 의자만 놓여

있어서 여기에 절망이 먼저 앉아버리면 희망이 함께 앉을 수 없고, 반대로 희망이 먼저 앉아 버리면

절망이 함께 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법칙을 올바로 깨닫기만 해도 우리는 절망을 쉽사리

대적할 수 있습니다. 내가 불안해 하고 있는 동안에는 나에게 평화가 올 수 없습니다. 내가

평화를 선택하면 불안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의지는 하나입니다. (본문중에서 p94)


이책의 전반을 이루는 이론은 희망, 희망 그리고 희망이다. 때로는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의 말처럼

이유없이 그저 희망이라는 메시지처럼 들려온다. 희망이 먼저 자리를 잡아버리면 절망은 자리 잡을

수 없다는 것. 물론 그 중간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중간하다는 말처럼

희망의 극단에 서서 절망을 비웃어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허허실실 상상마저

하게 만들어준다.



연구가들은 이 '바라봄'의 효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요령을 알아냈다. 대표적으로 3가지를 꼽는다.

첫째, 자주 바라보라! 미래의 목표를 반복해서 시각화할수록, 그만큼 그에 대한 욕구와 신념이 강화

된다는 것이다. 둘째, 선명하게 바라보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상 속에서 선명하게 그려내고

그것을 강한 신념으로 바라볼수록 그것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셋째, 계속

바라보라! (본문중에서 p134)


어디선가 많이 보아온 문구로 보일 것이다. '시크릿'의 그것이었나? '꿈꾸는 다락방'의 그것이었나?

'끌어당김?',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서 끊임없이 갈구하고 노력하고 지속적으로 꿈꾸라는 것.

그것이 바로 희망에 도달하기 위한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차동엽 신부의 희망의

메시지에서도 변함없이 희망에 대한 우리의 지속적인 갈구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것이 변하지 않는

진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포기해야 할 때와 포기하지 말아야 할 때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식별 방법이 궁금합니다.'

바로 고냐 스톱이냐의 문제! 의외로 나의 답은 복잡하지 않다. '만일 그것을 포기했을 때,

평생 후회가 될지 안 될지를 먼저 생각해 보라.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후회가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포기해도 좋다.'

(본문중에서 p201)


자신만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의미있는 문구인 것이다. 후회할 것인지 아닌지를

포기의 기준으로 제시한다는 것. 무엇인든 간결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는 것이고, 누구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고, 실행가능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기준이 있겠지만 지혜로 뭉쳐진 누군가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도 자신만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궤변을 늘어놓고 싶어진다.


차동엽신부의 희망에 대한 끊임없는 갈구에 대해서 다시금 그의 시각으로 해석해보자.

때로는 절망에 빠질수도 있겠지만 자신만의 깨달음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희망인 것이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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