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푸드스타일리스트가
그리는
시골살림 이야기
들살림 월령가 / 양은숙 / 컬처그라퍼
최근들어 귀농에 대한 관심이나 은퇴를 앞둔 이들이게 농촌생활에 대한 동경이라는 것이 방송을
통해서 자주 이야기되는걸 보면 아무래도 도시 안에서 지쳐가는 것이 우리네 일상인가보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농촌으로 가서 살아보는 것도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뭔가
살짝 빠져드는 느낌이 드는게 단지 저자의 멋진 음식 솜씨와 맛깔나게 차려진 음식사진 때문만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든다.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보낸다."는 봄볕이지만 오늘만은 아랑곳하지 않으련다.
하룻볕 상간에 분주해져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가죽나물, 찔레 순, 산초 잎, 칡잎, 뽕잎
등의 들나물, 들꽃들과 열전을 벌일 것이다. 경작이 정성과 기쁨을 주는 것이라면 채취는
경이와 감사를 알게 해준다.
놀아 달라, 알은체 해달라! 봄날이 보내오는 호출에 응답하고 기여한 것보다도 얻는 것이
많은 봄이다. 퍼주기쟁이 자연이 뿜는 절대매력의 수혜를 항상 받기만 하는 나로서는 염치가
없지만 그 덕분에 넘치도록 충만하다. 정녕 와글와글 축포 터지는 봄이다. (본문중에서 p33)
뭔가 일상을 농촌에서 한다는 것이 여유라는 단어로 다가온다. 도시인들의 일상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자연을 벗삼아 서로 기대로 살아간다는 개념이 어찌 느낄 수 있는 감정이리라
생각된다. 저자의 책 안에서는 여유로 느껴지지만 물론 그 안의 일상 안에서도 힘든 일과들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나름의 자연 안에서 복잡함을 덜어주는 바람, 내음 그리고 쌉싸름한 나물의
식감이 우리를 즐겁게 해줄 것만 같다.
사모님은 잠시 손을 내려놓으시더니 어느새 집에서 찐 감자를 수줍게 내오신다. 역시 손수
지으신 농작물이다. 조금 전 고할머니께서도 찐 감자를 주셔서 두 알을 먹은 참이었지만,
하지무렵에 캐서 찐 감자는 파근파근한 분이 각별하여 그 맛을 거부할 수 없었다.
오늘은 마을 주민들이 담합하여 온정 릴레이를 펼치기로 작정하신 날인 것만 같다. 곗돈을
붓지 않고도 계를 탄 기분이다. 장밋빛 인생이 거창한 것인가. 푸성귀를 나누며 훈정에
달뜨는 오늘이 바로 장밋및 인생이다. (본문중에서 p137)
시골의 푸근한 인심 그리고 정. 익히 들어오던 말이지만 실제로 농촌생활에서 느끼게 된다면
각박한 도시생활에서 하루하루를 신경 곤두세우며 만원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 내발을 밟지는
않을까하는 심정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행복이라는 단어로 다가오지 않을까.
물론 누군가는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곳에서 자신만의 생활을 위해서 농촌으로 내려가 전원생활을
택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사람이라는 것은 간사한 존재이기에 외로움
이라는 감옥안에서 결국은 탈출을 시도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런 서로간의 마음을 열고
온정을 베푸는 데에서 꽃피워지는 것이 아닐까.
그토록 애틋하게 그리던 목화가 지척에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꽃빛이 순해 계절이
살아 있을땐 작정하고 보지 않은 다음에야 식별은 쉽지 않았을 터다. 진즉에 알아보지 못한
아쉬움에 대해 스스로 건네는 미안한 변명이다. 서리를 맞아 피다만 삭과는 그대로 입을
오므려 생을 끝냈지만, 가까이 코를 갖다 대보니 내 후각이 기억하는 목화의 시원하고 달짝한
향기가 고스란히 들어 있지 않은가. 역시 후각은 인간이 지닌 감각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민감하고 세심하며 지속적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고 싶다. (본문중에서 p210)
저자가 말하는 하나하나의 농촌안에서의 기쁨과 행복이라는 부분은 그야말로 소소한 부분으로
보이지만 그것들이 소중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도시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감각들을 깨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후각, 청각, 시각, 미각, 촉각을 모두 곤두세워 줄 수 있는 평생 느끼기 힘들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바로 집 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축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약간의
불편함만 있어도 짜증을 내는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을 벗삼아 여유를 내안에 깨워준다는 것이
바로 마음의 평화를 선물해 줄것이다.
노력과 지혜로 총력을 쏟았던 '들판 드림팀'의 빈 논과 밭이 휑하다. 헛헛하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이입된 편리한 예단일 뿐, 청년과 중장년을 뚜벅뚜벅 건너온 노년의 빈 논은 자식 농사
잘 지어 출가시킨 노부모의 자긍심처럼 당당하기만 하다.
'너희들 늙어 봤냐? 난 젊어 봤다.' 우렁우렁 귓전을 울려온다. (본문중에서 p249)
아 마지막 한마디가 속이 시원하기까지 하다. 난 젊어봤다. 조금은 다른 이야기지만 집에서
키우는 화분에 정성을 쏟아본 기억이 있는가. 언젠가 시들해진 화분을 바라보며 측은한 마음을
보내며 조심스럽게 물을 뿌려주며 조금이라도 기운을 차리기를 기도해본 기억이 있다면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때로는 여유라고만 생각한 농촌 생활 안에서 비장함 마저
느껴지기도 한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과는 다르게 생활을 위해서 농촌으로 이주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통해서 느껴지는 여유는 왠지 생활의 넉넉함 만은 아니
더라도 마음의 안식처를 줄 것만 같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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