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없이 먹고
사랑하고
살아가기
내가 엄마의 부엌에서 배운 것들 / 맷 매컬레스터 / 문학동네
표지의 사진이 정겨운 엄마와의 추억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종군기자와 부엌. 뭔가 매칭이
안된다. 바로 이 책의 무대가 되는 곳은 종군기자가 있는 전쟁터이기보다는 전쟁같은 삶을
살아간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요리라는 주제를 통해서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행복으로 복원해
나가는 저자의 노력으로 대변될 수 있다.
어머니는 누나와 제게 세상을 뜰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머니를 잃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매력적이고 아름답고 우아하고 고결하고 친절하고
따뜻하고 온화한 어머니를 되찾았으니까요. 하지만 어머니는 떠났고 제가 할수 있는 있은
어머니의 숨결을 곁에서 느끼며 '품위 있다'는 단어의 마지막 정의들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본문중에서 p32)
누구에게나 겪게되는 일중에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슬픈일이라 상상속에 담아보는 것 조차도 그저 슬프지만 때로는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간접경험을 하며 그런 순간들을 생각해보곤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그저 피상적인 상상속의 무엇에 불과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엄마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아. 적도 나한텐 엄마는 실제로 바다와 하늘에 있어."
"그렇구나. 잘됐네." 누나가 말했다. "그런 식으로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하늘로 바다로 엄마를 찾아갈 수도 있고, 말도 걸 수 있을 것 같아. 이젠 내
마음이 한결 편해졌어." 하지만 며칠 못 가, 나는 나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곁 어디에도 엄마는 없었다. 엄마는 완전히 떠났다. (본문중에서 p58)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중에 가장 큰 것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유품을 통해서 또는 사진을 통해서 추억을 되살려 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그저 흩어진 기억을 다시금 짜내어 맞춰보는 과정에 불과할 것이다. 아마도 저자가 말한
것처럼 언제고 만날 수 있다는 느낌으로 생각을 떠올려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것이 바로 원하는 기억을 원하는 때에 되살리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육신이 이 세상을
떠난 것과는 별개로 정신은 남아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제 엄마는 부엌 식탁 근처에 늘 놔두는, 검정색 손잡이가 달린 작은 종을 들고 밖으로
나가 집 뒤 야트막한 억덕으로 올라간다. 대서양 바람을 닳고 닳은 산사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바로 그 언덕이다. 엄마가 종을 울린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종소리는 언덕과
들판을 넘어 찾아온다. 우리집 식탁에 뭔가 맛난 게 준비되어 있다는 걸 감지한 누나와
나는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간다. (본문중에서 p126)
너무나 정겨운 모습이고 저자처럼 필자또한 그런 어린시절을 보냈다. 해질녘까지 밖에서
놀다보면 어느순간 어머니의 목소리가 하늘에 울려퍼진다. "밥 먹어라~~~!" 아마도 하루종일
놀면서 이 소리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이 책 전반에 펼쳐지는 엄마와 저자와의 추억들은
이런 정겨운 기억을 되살리는 과정을 엄마의 부엌을 통해서 그려나가고 있다. 그리고 나라와
그 문화는 다르지만 우리네 가족애와 다를바없는 정겨운 모습에 독자들에게 향수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그 무엇인가를 뭉클하게 전달하는지도 모른다.
기억을 되살리고 불러내는 데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과거로부터 좋은 엄마를 기억
해내고 불러내기로 했었다. 내 기억 속에 어둡게 자리잡고 있는 끔찍한 엄마 옆에 엄마다운
엄마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부엌에서의 '재회'에 필요한 조건들을 갖추려
나름대로 온갖 궁리를 해가며 애썼다. 우선, 요리가 그랬다. (본문중에서 p175)
이 책의 제목에서부터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부분은 종군기자와 부엌이라는 공간의 부조화가
그저 필자만의 선입견이라 치부하기는 어려웠던 만큼 저자의 엄마에 대한 좋은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이 그만큼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불행한 말년을 보낸 엄마에 대한 끔찍한 기억들을 지우고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로 새롭게 채우기 위해서는 부엌이라는 공간만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한 기억을 되살리기에 엄마의 요리를 통해서 오감을 이용한 방법이 이 책 전반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한 매개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 시작과 끝 사이에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관계가 있는데, 그 관계의 끈이 바로 우리의 기억을 채워주는 자양분이 되고 때로는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 관계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끊을수 없는 고리이다.
이 책의 마무리 단계에서 다시금 생각해본다. 저자가 엄마와의 행복한 순간은 떠올리기 위한
장소로 부엌을 선택했듯 나의 가족들과 행복한 순간을 채워준 공간은 어디였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디가 될까?하고......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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