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읽을때마다 느끼지만
이상하게 몰입하도록
만들어준다.
보통이지만 보통이 아니다.
철학의 위안 / 알랭 드 보통 / 청미래
그의 책을 읽을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뭔가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다. 그리고 상당히 디테일하면서도
자신만의 생각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표출한다. 바로 이것이 알랭 드 보통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때로는 경제경영분야에서 내가 좋아하는 세스고딘과 함께 보았을때 머리카락이 없어야 글을 잘 쓰는
것인가하는 고민도 잠깐씩 해본다.
타인과 대화할 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는 상대방의 호감을 사는
것이다. 타인을 즐겁게 해주려는 욕망에 휘둘려 나는 마치 학예회날 학교를 찾은 학부모처럼
그다지 우습지 않은 농담에도 크게 웃는다. 나는 대다수 사람들이 신봉하는 관념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의문을 품지 않았다. (본문중에서 p14)
아마도 위에서 말한 사람의 특질은 우리들 대부분을 대표하는 행동양식일 것이다. 필자도 그렇지만
타인과의 대화안에서 이미 머리속은 다음 대화를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겉으로는
가벼운 웃음과 함께 무조건 공감한다는 끄덕임이 앞설것이다. '좋은게 좋은거야'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계속되는 동의와 공감을 표현하다보면 어느새 대화는 저멀리 가있고, 공통의
관심사라는 것도 그저 형식적인 것에 그칠 뿐이다. 이렇게 행동하다보면 혼자 남겨졌을때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고 피곤하기 까지 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에서 거부의 정당한 명분보다는 단순히 거부하는 자세를 미화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의 의도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진실과 동의어로 보는 것은, 인기가 없는 것을 오류와 동의어로 믿는 것만큼이나 고지식한 짓일
것이다. 하나의 관념이나 행동이 유효하느냐 않느냐는 그것이 폭넓게 믿어지느냐 아니면
매도당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논리의 법칙을 지키느냐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다. (본문중에서 p62)
'인기없는 존재들을 위하여'라는 챕터명으로 쓰여진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대중의 인기에 따라서 본질적인 사상이나 그 의미가 변질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어떠한
이유이던 대중들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 정의를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도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대안이 없어 정의에 어긋나지만 대중의 선택으로
위법적인 일들이 묵과되는 경우가 많은것이 바로 그런예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은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목표이다'라고 단언했다. 에피쿠로스는 훌륭한
음식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고백했다. '모든 행복의 시작과 뿌리는 위의 쾌락이다. 심지어
지혜와 문화까지도 여기에 귀착된다.' 말하자면, 철학은 잘 실천하기만 하면 쾌락으로
인도하는 안내인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었다. (본문중에서 p72)
과거의 자기계발이라는 것이 도덕적인 측면에서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대해서 끝없이 정진하는 바른
모습을 강조했다면 최근에 와서는 스마트하게 효율적으로 일하고 그로 인해 생긴 여유를 마음껏
즐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듯 보인다. 최근에와서야 우리가 내일의 행복을 위해서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주 오래전 에피쿠로스가 주장했던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해는 생각이다.
불안을 다스리는 데는 사색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 문제를 글로 적거나 대화 속에 늘어놓으면서
우리는 그 문제가 지닌 근본적인 양상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을 파악함
으로써 우리는, 비록 문제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부차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 말하자면 혼란, 배제, 마음의 고통 등을 예방할 수 있다. (본문중에서 p83)
요즘 흔한말로 하는 '멘붕'이라는 상태에 빠지게 되면 자신을 주체할 수 없을만큼 혼란에 빠져
평소에 하지않던 행동들을 자신도 모르게 하곤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여러 심리학 관련 서적들에서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 심호흡을 하라, 숫자를 천천히
세어보라 등등의 수많은 방법을 말하고 있지만 현실에서의 대처는 사실 쉽지 않다. 문제에 대해서
해결이라는 관점의 적극적인 대처법도 있겠지만 때로는 문제를 떠나 마음의 평정을 찾은 후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객관적인 시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는 것이 더 이득인 것은 당연한 것 아닐까?
세네카는 사람들의 마음을 많은 철학자들과는 다르게 이해했다. 논증들은 마치 뱀장어와 같아서,
그것이 제아무리 논리적이라고 하더라도 이지미와 스타일로써 마음속에 각인시키지 못할 때에는
마음의 느슨한 손아귀에서 미끄러져 빠져나갈 것이다. (본문중에서 p126)
대학입시에 논술이라는 과목이 등장할 정도로 우리의 세상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논리적인 것이 최고의 방법인양 수많은 책과 언론에서 말하고 있지만, 그 논리를
통해서 이해하고 감동받아야 할 대상이 바로 사람이기에 더욱 나름의 모순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배우거나 알고 있는 논리라는 것은 어느정도 선에서 기법적인 그러니까 기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잘 사용한다면 어느정도 선에서는 효과를 거둘수 있겠지만 사람을 감동시켜 설득이라는
단계에 이르게하기에는 그 수준은 과감하게 하수의 것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왜냐하면 대중들은
이성보다는 상황에 대한 감성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가 펼쳐가는 방식은 인기없는, 가난한, 좌절한, 부적절한, 상심한, 어려움에 처한
존재에 대해서 철학자들의 시각으로 자신의 견해를 풀어가고 있다. 다른 저서들도 그렇지만
무엇인가 드러나지 않는듯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큰 지식 안에서 빙둘러 주제에 돌아오게 만드는
능력에 그저 감탄할 뿐이다. 이런 주제와 전체적인 틀을 생각해 내기위해서는 어떠한 능력이 필요한
것일까 하는 생각으로 쉽게 책장을 마무리하지 못하면서.......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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