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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 셸리 케이건 / 엘도라도


제목부터 뭔가 어렵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뭔가 물음표를 달고 끝내야 할 문장에 물음표는 존재

하지 않는다. 그만큼 저자의 강한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가. 이 책의 표지를 보면 그런 성향을

더욱 느낄 수 있는데 바로 공중부양을 하고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는 강의실 탁자위에 가부좌를

틀고있는 저자의 모습이다. 책의 두께에 놀라버릴만 한 분량이지만 일단 책장을 펼치고보면 그런

생각은 날아갈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영혼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육체적 죽음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 더 많은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영혼이 육체적 사망 이후에 살아남았다고 해보자. 정말 그렇다고 해도, 과연 

얼마나 더 오래 생존할까? 영원히 이어질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은 불멸의 존재인가?

(본문중에서 p34)


사실 죽음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우리는 그저 두려운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또 많은 생각하는

것이라면 바로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라는 주제가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이 주제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자신있게 결론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셸리 케이건의 글을 읽다보면 뭔가 모를

논리의 고리 안에서 자신만의 주장을 펼쳐나갈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셸리 케이건은 사후세계라는 측면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는 주장으로 논리를

펼쳐가고 있다.



우리의 정신적인 삶은 이처럼 경험의 질적 측면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어떤 순수한

물리적 존재도 이와 같은 특성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계도 고통을 느끼고, 빨간색을

인식하며, 희열을 맛보지 못한다. 기계는 경험의 행동적 측면을 가질 수는 있으나 질적인 측면을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두 가지 측면 모두를 가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수한

물질적 존재 이상이다. 인간은 기계 이상의 존재인 것이다. (본문중에서 p62)


이 책의 재미는 죽음이라는 심각해보이는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논증을 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지만 더 재미있는 점은 바로 저자의 다양한 생활 속 예시를 통해서 논증을 풀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 예시 안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죽음에 대한 주장을 펼칠 수 있는 공감을 할 수 있고 또

자신만의 생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데에 더 높은 평가를 해주고 싶다.



가령 린다가 잠을 자고 있을 때, 그녀의 몸을 이루고 있는 모든 원소들을 해체해 새로운 몸을 

창조했다고 해보자. 그건 100퍼센트 바뀐 것이며 선을 넘어선 변화다.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변화의 정도가 근본적인 차원이어서는 안 된다. 저녁을 먹거나 체충을 줄이는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는 중대한 수준의 변화가 아니다. (본문중에서 p179)


물론 이 책에서 나오는 예시들이 모두 현실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몸을 모두 해체해서 다시

조립하는 것 자체가 지금의 과학으로는 말이 안되는 것이지만 우리의 상상안에서 이루어질 수는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깊은 생각들을 이끌어 내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단, 위의 예시처럼 저자가 선을 긋고있는 '변화의 정도'라는 저자의 상식 안에서의 공감을 이끌어

내려는 기준제시가 바로 이 책의 맹점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러한 정량적일 수 없는 기준에 대해서

어떻게 가정하느냐에 따라서 논증의 결과는 이미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버리기에 조금은

죽음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있어서 방해요소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방해는 바로

'변화의 정도'가 얼만큼 되어야 근본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냐라는 논쟁을 만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신에게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자 한다. 이 말이 사실

이라고 해보자. 그런데 사람들 대부분 경쟁에서 이기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는 반면,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는 일에는 별로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자신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하지 않는다. (본문중에서 p281)


뭔가 틀에 박은 듯한 말이지만 위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결국은 우리가 죽음이라는 자체에

대해서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닌가 생각된다. 뭔가 유한하다고 생각하는 삶 안에서 우리가 죽음을

대처하는 방법이라는 것은 한정된 무엇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죽음 자체에 대해서는 우리 인간이

대처할 수 있는건 그저 한계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생이 지속되는 한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와의 의미있는 시간을 최대한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물론 그 안에는 현실적인 제약이라는 장벽이 가로막고 있지만 우리가 바로 이 책

안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교훈은 다양한 논증이라는 바로 이런 근본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두려움의 대상을 정확하게 지목할 수 있다. 그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따르는

박탈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박탈은 본질적으로 나쁜 것이 아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상대적으로'내건, 즉 두려워하는 대상이 나쁜 것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시킨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이 죽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죽음으로 인한 박탈이라고 한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적절한 감정이라고 하겠다. (본문중에서 p418)


바로 이 '박탈이론'이라는 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에

공감하기 때문에 바로 영혼의 존재에 대해서 모두가 믿으려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제 자체가 너무나 무겁고 어려운 것이기에 책을 처음 선택했을 때에 걱정이 앞섰지만 다 읽고

나서는 읽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더욱 진정성 있게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었다는 소득도, 한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으로 논증에 임할 수 있다는

생각의 분류에 대한 나만의 정리라는 소득도 얻을 수 있었으니 예일대 최고의 명강의 답게

일석이조의 선물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마무리 한다.



- Real Pri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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